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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감탄 자아내는 탄중아루 선셋
2020-06-26 15:36:35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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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 자아내는 '탄중아루 선셋'

전동휠체어 타고 떠난 중증 장애인의 해외 여행기-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6-26 10:44:20
탄중아루 선셋에서 해를 담는 아내. ⓒ정민권 ▲ 탄중아루 선셋에서 해를 담는 아내. ⓒ정민권
머리털 나고 온 가족이 해외여행이란 걸 처음 떠나본지라 할 말도 많은데 그에 버금가게 일도 많아서 지지부진 뒤로 미루다 에이 고만 쓸까 싶다가도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나만의 기억이 될까 해서 기억나는 대로 기록하다 보니 길어진다.

이 길고 긴 게다가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이야기가 너무 길다고 타박하는 아내를 차마 앞에서는 못하고 돌아서 뒤통수로 째려봤다. 그러니 길기만 하면 읽지 마시고 읽을만하면 읽어 주시고 재미있으시다면 다음 날도 기억해 주시기를.

 
해변에서 인생 샷을 남기는 가족들. ⓒ정민권 ▲ 해변에서 인생 샷을 남기는 가족들. ⓒ정민권
새팡가르 섬에서 돌아오는 배는 바로 오지 않았다. 함께 탄 이국의 관광객이 보고 싶다던 수중 가옥을 보기 위해 잠시 들렸다. 덩달아 코스 하나가 더 생긴 거였는데 개인적으로 안 보느니만 못했다.

머리 박고 신나게 스노클링에 해수욕을 즐긴 바다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하필 바다에 오물을 쏟아붓는 장면을 목격할게 뭔지. 주민들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배는 수상 가옥과 가깝게 다가가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 아닌가 싶다. 수상 가옥은 시내에도 몇 채 있었는데 그곳 역시 가옥 근처는 깨끗하지 않았다.

선착장에 다 와서 배는 파도에 넘실대며 속을 뒤집어 놓았다. 훅 올라오는 멀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호텔에서 잠시 쉬었다가 그리도 환상적이라는 탄중아루 선셋을 보러 가기로 했다.

울렁대는 속을 달래자고 호텔에서 잠시 쉬려는데 키가 말썽이다. 몇 번 해보다 결국 로비로 향했다. 멀미에 영어 울렁증에 내 속이 속이 아니다. 이때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는 딸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 건가 보다.

좀 쉬고 나니 속이 좀 괜찮아졌는데 탄중아루 선셋으로 향하는 멀미 유발 차를 타자마자 고개를 파묻고 눈을 감았다. 시내를 관통하는 동안 길이 좁은지 차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비포장 도로처럼 계속 덜컹거렸다. 눈도 못 뜬 채 방방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1시간쯤 왔을까? 아니면 눈도 뜨지 못해 그리 오래 걸린 느낌이었을지도.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길이 많이 막혀 서둘렀다며 미미가 앞장섰다. 그래서 그런지 주차장은 대형차도 없고 좀 한산한 느낌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습하고 훈훈하고 끈적이는 바람이 밀어닥친다.

휠체어에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꽤 멀어 보였다. 주차장 일부만 시멘트고 주변은 잔디와 야자수가 즐비했다. 그 너머에 해변이 있어 휠체어로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긴 어렵다. 그래도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선셋의 감동은 똑같다.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이리저리 휠체어를 움직이며 셀카봉을 동원해 사진을 찍었다. 태양이 점차 수평선에 가까워지자 다들 어디 있었는지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떼로 몰려나왔다.

 
아내와 나 ⓒ정민권 ▲ 아내와 나 ⓒ정민권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찌나 멋들어지는지 평소에 찢지 않던 셀카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실루엣도 마구 찍어댔다. 한참을 그렇게 사진을 찍다 우연히 개미떼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먹다 흘리거나 버린 다디단 음료 때문일지도 모르는 잔디 위에는 적지 않은 개미집이 있었고 주위로 개미들이 우글거렸다. 물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화들짝 놀랐다.

그나저나 이리 멋진 선셋이 펼쳐진 해변이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해변을 따라 각종 유흥 시설이 넘쳐 났겠지. 뻔할 뻔자 아니겠나. 반면 이곳은 환경을 생각해 아주 최소한의 판매시설만 운영된다고 한다. 그 덕에 음료수 한잔 사려고 해도 엄청나게 줄을 서야 했다.

어디서 어떻게 찍어도 작품이 된다는 피크 타임이 되자 사람이 말도 못 하게 많아졌다. 뻥을 좀 보태면 해변에 모래알보다 사람이 많다. 어쨌거나 일몰이 시작되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사람들이 하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인생 샷 하나 얻어보자고 맨땅을 방방장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니. 가족들과 함께 뛰어오르지 못한 게 좀 아쉽지만 실컷 사진을 찍고 저녁을 먹으러 시푸드 레스토랑으로 출발!

 
어마어마하게 넓고 어마어마 무덥던 필리핀 마켓. 오른쪽 중앙이 문제의 주스 통이다. ⓒ정민권 ▲ 어마어마하게 넓고 어마어마 무덥던 필리핀 마켓. 오른쪽 중앙이 문제의 주스 통이다. ⓒ정민권
이곳 현지인들은 밤 문화가 비교적 없는 편이어서 조용한 편이다. 이슬람권이 술 문화 자체가 없어 그렇다니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좋은 이미지로 남았다. 아무튼 웰컴 시푸드 레스토랑에서 특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한국말로 넉살 좋게 "맛있어, 맛있어"라던 친절한 직원들이 새우부터 크랩, 거대한 물고기에 오징어 튀김, 모닝글로리 등 계속 날랐다. 아쉬운 건 일정에 지친 탓인지 휠체어로 들어가기 좀 쉽지 않아 낑낑댔더니 더위를 먹어 사진 찍을 정신이 없었다.

밥을 먹자마자 쉬고 싶었지만 틈도 없이 미미는 필리핀 야시장으로 안내했다. 가는 길은 왕복 이차선 좁은 도로 옆으론 높은 빌딩이 치솟아 있어 길 하나 사이로 빈부의 격차를 격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기도 불평등은 없는 자들의 몫이다.

도로는 차만 다니지 않아서 차들과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넘쳐났다. 마켓 주위를 두 바퀴나 돌았는데도 주차를 할 곳을 찾지 못했다. 휠체어 내리기가 어려워 차에 있겠다 했는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델 보겠냐"고 미미가 적극적으로 길을 막아서고 휠체어를 내렸다.

거리 풍경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웠거나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들. 너무 당연한 표정으로 구걸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사이를 또 아무렇지 않게 무심히 지나치는 관광객들. 그 틈에 휠체어를 탄 나. 이 와중에 직업의식인지 아이들의 빈곤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나니 감정이 복잡 미묘해졌다.

이곳은 말레이시아지만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형성된 시장이라 필리핀 야시장으로 불린다고 했다. 차와 오토바이가 넘치는 이런 위험한 환경에 방치된 어린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쓰였지만 절대 손을 내밀지도 돈을 주지도 말아야 한다며 이곳에서 베푸는 온정은 자칫 화를 부르기도 한다는 미미의 말에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갑자기 고막을 날카롭게 울리는 괴성. 구걸하던 돈통에 동생이 손을 댔다는 이유로 벽돌을 집는 누나라니. 무섭다기보다 마음이 아팠다.

울퉁불퉁 위태위태 이어지던 길을 가던 휠체어는 결국 멈췄다. 길이 움푹 파여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난감한 건 부축을 받는다 한들 길이 좁은 데다 사람도 많아 걷기도 어렵다. 역시 장애는 내가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문제다. 장애는 인식과 환경이 만든다. 포기하고 한쪽에서 사람 구경이나 하며 기다리려 했지만 미미가 고집을 부렸다.

가이드인 미미의 입장에선 한 명쯤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일 텐데 몸이 불편한 나를 위해 애쓰는 그녀 덕분에 또 한 번 벌떡 일어서 기적을 행했다. 진짜 아무데서나 안 하는 일인데 코타에서 너무 자주 하는 거 같다. 어쨌거나 어렵사리 도착했는데 정작 시장 통로가 너무 비좁아 갈 수가 없었다. 흡사 병에 꽃아 논 깔때기를 빠져나가는 콩알들 같았다.

입구에서 기다리며 '정글의 법칙'에서 봤던 코코넛에 빨대를 꼽았다. 예능이라 그랬나? 시원하고 달고 맛있다고 눈알까지 크게 뜨더만 뜨뜻하고 밍밍하고 아무 맛도 안 난다. 역시 미디어는 믿을 게 못된다. 코코넛 주스는 그냥 기분만 내는 걸로. 시장 입구 코코넛 주스는 4링깃, 한화로 1200원 정도였다.

가족들을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며 사람 구경을 했다. 엄청 큰 시장에서 엄청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관광객은 한국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현지인들도 한국말을 잘하고 심지어 과일 위에 "애플망고 진짜 맛있다", "애플망고 존맛 탱구리" 같은 가격표도 올려놓았다. 물어보니 한국 관광객이 써줬다는데 이왕이면 예쁜 말로 써줄 것이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정리를 시작하길래 꽤 많이 남은 애플망고 주스를 어떻게 할까 싶어 지켜보는데 남은 주스를 버리지 않고 그 무더운 날씨에 그대로 고무통에 넣어 자물쇠로 잠가 놓았다. 그리고 다음 날 그 통에 주스 분말을 넣고 물을 채워 다시 파는 식이어서 대부분의 주스가 밍밍한 거였다. 이젠 음료는 마트에서 사 먹는 걸로.

그렇게 필리핀 야시장 체험을 마치고 다들 양손에 무겁게 과일들을 들고 숙소로 향했다. 그나저나 낮에 해양공원 모래사장을 좀 걸었다고 통증이 허리부터 엉덩이를 타고 종아리까지 뻐근했다. 그렇게 둘째 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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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정민권 (djanmod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