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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박관찬 기자]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2026년 4월은 그 어느 해보다 변덕스러웠던 날씨들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연 씨(가명)에게는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러웠던 중간고사 준비로 두고두고 회자될지 모를 기억으로 남게 됐다고 한다.
시각장애가 있는 미연 씨는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수강할 예정인 과목의 강의계획서에 있는 교재를 빠르게 확인하여 대학 내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대체도서 제작을 요청했다. 대체도서는 시각장애학생이 원활하게 강의를 수강할 수 있도록 교재를 점자도서나 확대도서 등 시각장애학생의 편의에 맞게 제작한 도서다.
늦지 않게 대체도서를 받아 강의에 임하던 미연 씨는 4월 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두고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미연 씨가 수강하는 A 과목의 담당교수가 중간고사 범위를 정리한 내용이라고 학생들에게 A4 4장짜리 자료를 나눠 주었던 것이다. 미연 씨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허둥지둥 장애학생지원센터로 가서 조금 전에 받았던 자료를 대체도서로 제작해달라고 요청했다.
미연 씨가 서두른 건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대체도서 제작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시기가 중간고사 준비기간이라는 게 문제였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는 담당자가 대체도서 제작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제작 방법 등을 교육하고 도우미 학생들에게 대체도서 제작이 필요한 도서를 맡기는데, 이렇게 대체도서 제작을 하는 인력이 ‘학생’인 만큼 그들도 중간고사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빠른 대체도서 제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행히 담당자의 노력으로 미연 씨가 대체도서 제작을 요청했던 4장의 자료를 몇몇 도우미 학생들이 나눠서 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시험기간이 아니라면 도우미 학생 한 명이 4장의 자료를 제작할 수 있지만, 시기의 특수성과 빠르게 제작해야 하는 필요성으로 인해 자료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어 제작하게 했던 것이다. 덕분에 미연 씨는 자료를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넘긴 뒤 이틀 후 메일로 대체도서를 받아 시험준비를 할 수 있었다.
미연 씨는 “처음 자료를 받았을 때 교수님께 파일로도 달라고 요청할까 고민했는데, 내용을 얼추 들어보니까 표와 그림 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대체도서 제작이 필요해 보였다”면서, “교재는 수강신청 후 교재를 미리 확인하고 대체도서 신청을 하면 그래도 최대한 학기 시작에 맞춰 받을 수 있는데, 이렇게 학기 중에, 그것도 시험기간이 되어서 자료를 받게 되면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이어 미연 씨는 “다른 학생들은 그 자료를 받은 날부터 바로 공부를 할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대체도서로 제작된 걸 받아야지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고 대체도서 제작으로 인한 불편함을 전하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시각장애학생의 학습권은 여전히 비장애학생들의 그것과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것은 어떤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미연 씨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료를 사진 촬영하여 챗GPT에게 사진의 내용을 텍스트로 정리해달라고 할 수 있지만, 정확성과 퀄리티라는 부분에서 큰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시험 준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는 오타뿐만 아니라 표나 그림의 설명도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시각장애학생을 위한 대체도서 제작 교육을 받은 도우미 학생이 제작한 대체도서가 훨씬 낫다는 것이다.
미연 씨는 “예전에 챗GPT에게 변환을 맡겼던 사진의 내용으로 공부하다가 오타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넘어갈 뻔한 적이 있었다”면서 “챗GPT는 순수하게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지, 시각장애인이 이해하기 편하도록 제작해주는 게 아니라서 소소한 일상에서의 사진이나 이미지가 궁금한 게 아닌 시험처럼 중요한 부분은 활용하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한편, 지난 3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각장애인 학생과 교원을 위한 교과용 도서의 적시 제작과 보급, 디지털 파일 납본을 의무화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번 미연 씨의 경우처럼 교과뿐만 아니라 수업 중에 제공되는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도 시각장애학생이 원활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후속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