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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부모의 울타리가 복지 사각지대
2026-01-30 18:34:30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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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울타리가 복지 사각지대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는 매우 복잡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장애 자녀에 대한 태도도 다양하고, 자신의 경제적 부담과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의식도 그렇고, 장애 수용 정도도 다양할 수 있다. 가족 간의 관계와 성격,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 경험, 지식, 성품, 교육관, 가족에 대한 책임감 정도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장애인등록을 거부하고 장애인등록이 낙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녀가 장애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잠시 아픈 것이라고만 여기며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멸시와 값싼 동정에 대한 거부감, 자신의 약점이나 불명예로 여겨 장애인등록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사회 서비스의 확대로 인하여 장애인등록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장애인 부모의 역할이 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것은 여전하다.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부모의 교육이나 가족 교육은 장애인단체에서 일부 실시하기는 하지만 그런 교육 정도로 모든 장애 부모나 가족의 인식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만약 가족의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장애인 자녀에게 악영향을 미칠 경우 그 피해는 장애인 당사자가 될 것이다.

그런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자녀의 자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과잉보호나 방임을 하는 것이다. 물론 부모가 장애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수용하는가와 교육관이나 양육 태도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부적절한 양육 태도나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하거나 자립생활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 가정은 장애인의 수용시설이 되어 버린다.

장애인이 성인이 되어 자립생활을 원하지만, 그리고 주위의 장애인들이 사회활동을 함께 하기를 권하며 지원을 하여도 절대 안 된다는 부모의 태도와 다른 장애인들과의 차단으로 자립은 좌절되고 마는 경우가 아직도 여전하다. 부모는 동료 장애인들을 악당으로 취급한다.

우리 아이가 장애가 심하여 자립은 꿈도 꿀 수 없다거나, 밖으로 끌어내면 앞으로 모든 인생을 책임질 것이냐며 완강히 거부하면 결국 장애인은 부모를 설득하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외부 활동을 포기하고 은둔이나 칩거 생활을 해야 한다.

청각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30대 여성이 있다. 장애인등록을 하였고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의 부모는 경계선급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어 장애인등록은 하지 못했다. 자녀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다. 활동지원서비스가 보호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니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집 밖으로 나가거나, 장애인단체 활동을 하거나, 장애인복지관이나 단체의 어떤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경제권이 없어 교통비도 프로그램 참가비도 부모가 주지 않으면 꼼짝을 할 수 없다.

장애인재활협회에서 3만 5천원만 내면 1년간 다양한 여가 활동 프로그램이나 장애인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데 아무리 부모에게 권해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만 있으라는 것이다. 누가 비용을 대납해 준다고 해도 거부한다. 물론 특별한 학대는 없다. 식사도 양질의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단지 돈을 쓰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사람과 접촉하여 도움을 받거나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장애인이란 존재로 알려지는 것을 부모는 원치 않는다.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심심하니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면 된다는 것이다. 수급자로서 어느 정도의 생활은 할 수 있으니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인 장애인은 너무나 따분하고, 지겹다. 집 밖의 세상이 너무나 궁금하다.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 그런 호기심이나 사회활동 욕구가 부모에게는 부담이고, 귀찮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므로 조용하게 집에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재활협회와 장애인단체, 복지관 등에서 부모들에게 설득을 하여 집 밖으로 끌어내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장애인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활동지원사를 통해 부모를 설득하는 노력을 했다. 결국은 그러한 말을 꺼낸 활동지원사만 해고를 당했다.

현재의 활동지원사는 전 활동지원사의 억울한 사건을 알고 있기에 감히 부모에게 장애인 사회에서 활동하게 하거나,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권하지 못한다.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으니 특별히 활동지원사가 할 일이 없다. 단 한 가지 말동무가 되어 놀아주거나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이다.

하루 8시간을 그냥 쳐다보고만 있거나 놀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활동지원사는 백화점, 공원 등을 데리고 다니며 바람을 쐰다는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퍼즐 그림 맞추기 등 게임을 가르치며 보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수영과 테니스 등도 가르치는데 이것은 부모에게 비밀이다. 부모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을 알면 활동지원사를 해고할 가능성이 높아 비밀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두 사람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는 것을 넘어서는 스포츠나 취미활동은 허용하지 않는다.

거주시설 장애인들을 자립시켜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생활을 하도록 돕기 위해 장애인단체들은 많은 노력을 해 왔다. 탈시설 운동도 하고, 시설 인권 실태 조사도 하고, 자립생활 상담과 교육도 하고, 자립생활 체험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자립지원 솔루션도 운영한다.

이렇게 시설 장애인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서 자립 지원에 전념하고 있지만 가정에서의 수용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자립을 위한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밖으로 나오거나 부모가 원할 경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부모가 거부할 경우는 시설 장애인보다 더욱 자립이 어렵다. 시설 장애인은 간섭하거나 통제하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 용기만 내면 되지만 가정의 은둔 장애인들은 부모라는 거대한 담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가정에 은둔하게 하는 것은 감금은 아니다. 부모가 경제적 착취도 아니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므로 장애인 학대에 해당되지 않는다. 시설이라면 학대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방임이나 유기로 처벌할 수도 없다. 일부 방임을 하는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부모의 보호자권이 그 보호권의 행사로 인하여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시설에서는 단조로운 늘 같은 머리치장은 인권침해이지만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다. 가정은 자기 결정권이 통하지 않는다.

장애 문제가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고, 부모가 행사하는 권한이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보호자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다. 중학교라는 의무교육만 시키고 고등학교를 보내지 않는 부모가 있다고 하자. 아무리 장래가 촉망되고 우수한 성적과 재능이 있어도 부모가 거부하면 자녀의 능력이 사장되어도 누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 다시 야학을 다니거나 자비로 대학에 도전할 수도 있겠으나 장애인이고, 집에 장시간 은둔해 있는 데다가 지적장애가 있어 자립의 의지를 가질 기회도 갖지 못했다면 이런 결과를 만든 부모를 처벌하고 싶은 심정이어도 부모를 설득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탈시설이나 자립생활 운동을 하거나, 그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가 이런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은 별로 하지 못한 것 같다. 사회복지사를 통해 지속적인 설득을 하거나, 보호를 제대로 하는지 감시망을 가동하거나, 가족 교육을 통해 인식개선을 도모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할 것인데, 그러한 노력을 하는 전문인력이나 복지사 자리도 없고, 부모가 완강하고 단호하면 모두 뒤로 물러나고 마는 것이다.

장애인 부모의 과잉보호나 가정에서 은둔을 조장하는 보호를 하는 경우 그 부모의 보호막이 장애인복지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심각한 학대나 방임이 아니어도 부모의 태도나 성장 기회 박탈로도 장애인의 인생을 좌우하는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것이다. 활동지원을 받는 장애인 성인에게 가정의 은둔생활 수준에 놓인 장애인들을 위한 의무교육을 만들거나, 가족지원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탈시설 장애인들이 화려한 실적을 내고 요란한 결과를 얻기 위한 과시성 운동이 아닌 진실한 운동이라면 가정에서의 자립생활 운동보다는 시설 위주의 운동으로 은둔 장애인들의 인생이 허비되고 있음에 깊이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보모의 보호막과 복지서비스의 신청제가 자신의 행복추구권과 복지서비스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권리는 행사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인이 되어도 내 희생으로 계속 돌본다는 생각이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음을 부모들도 각성하고 부모 동료 상담을 통해서라도 사각지대를 제거해야 한다. 정말 부모 품에서 공권력으로 강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안타까운 사례들을 가슴 아프게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장시간 텔레비전이 꺼지지 않는 노인 가정에 긴급 출동을 하듯이 장애인 가정에 텔레비전이 너무 장시간 켜져 깨어 있는 시간 거의 시청을 하고 있으면 그런 가정을 찾아내어 무엇인가 조치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