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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25센트) 동전. ©미국 연방조폐국 홈페이지
미 조폐국은 8월 10일(현지시간) ‘아메리칸 위민쿼터스 프로그램'으로 스테이시 박 밀번(Stacey Park Milburn·1987∼2020)의 삶과 유산을 기념하는 25센트 동전(쿼터)을 발행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 등에서는 2022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20명의 여성을 쿼터 뒷면에 새기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참정권, 시민권, 노예제 폐지,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 사회의 발전에 공헌한 여성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밀번은 영광스럽게도 19번째 헌정 대상자가 됐다.
한국계 인물이 미국 화폐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조폐국은 밀번을 “리더이자 비전가, 문제해결자였으며, 장애인의 정의를 위한 맹렬하면서도 연민 어린 활동가였고, 젊음과 목적의식, 헌신으로 빛났다”고 평가했다.
스테이시 박 밀번의 한국 이름은 박지혜다. 주한 미군이었던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서울에서 태어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자랐다. 메소디스트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네 살에 미국 진보·시민운동의 요람인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고 전한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근위축증을 앓았던 중증 지체장애인으로 한국계 미국인, 퀴어, 장애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활동했다. 특히 장애인사회 내에서도 소외된 성소수자들(LGBTQ)과 유색인들을 위해 헌신했다.
밀번은 일찍이 청소년 시절부터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부모님께 “너는 다른 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말씀을 들으며 자랐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낙상 사고를 겪은 것을 계기로 자신의 몸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점을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체장애인으로 사회 곳곳에서 겪는 불편함과 부당함, 그리고 사회가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등 생각을 담은 진솔한 개인 블로그를 운영했다. 거기에 실린 글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청소년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던 2007년 공립 고교 교육과정에 장애인 역사를 포함시키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의 개편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국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뒤부터는 자신보다 더 형편이 좋지 않은 유색인·저소득층·노숙자들을 위한 권리 증진 운동에 매진했다.
스테이시 박 밀번은 장애를 환대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했다. 2017년 온라인 커뮤니티 장애 가시성 프로젝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세상은 말 그대로 우리를 수용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창의적인 문제 해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이 고장 났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퀴어들, 성별비순응자(태어날 때 지정된 여성 또는 남성 성별에 따라 자신의 외모나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 유색인들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회에서 정말로 밀려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밀번은 장애인의 건강권을 위해 특히 힘을 쏟았다. 한 인터뷰에서 “의학은 삶의 질에 관한 것인가요, 아니면 사회적 통제와 ‘좋은’ 신체에 대한 이 생각을 영속화하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의 한 전력회사가 산불에 대처하기 위해 수천 가구의 전력을 차단했을 때, 밀번은 발전기를 분배해 인공호흡기나 다른 의료 기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파워 투 라이브(Power to Live)라는 상호 지원 노력을 조직할 수 있도록 앞장섰다.
팬데믹 위기 동안 자신처럼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장비를 빼앗길 위험에 처할 수 있으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동등한 치료 접근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유튜브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장애정의 문화클럽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몇몇 친구들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자원이 없는 베이 지역의 노숙자들을 돕는 활동을 했다. 마스크, 비타민, 장갑, 그리고 직접 손 소독제가 담긴 키트를 직접 만들어 노숙자 캠프에서 배포했다.
안타깝게도 밀번은 2020년 5월 19일 3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20년 신장암이 빠르게 퍼져가고 있었으나 팬데믹 사태로 병원시스템이 마비돼 수술이 계속 연기되었고, 결국 수술 합병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5월 19일은 그녀의 생일이자 기일이 되었다. 친구들과 팬들은 소셜 미디어에 #StacyTeughtUs(스테이시는 우리를 가르친다)라는 해시태그로 경의를 표했다. 구글에서는 웹사이트 로고를 하와이 꽃과 함께 호랑이 꼬리에 감긴 밀번의 그림으로 꾸미기도 했다.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누구보다도 큰 발자취를 남긴 장애여성, 스테이시 박 밀번. 자신보다 더 소외된 장애인, 노숙자들을 위해 헌신한 사람. 그는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장애정의운동의 지향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이었다. 밀번의 얼굴이 새겨진 미국 동전이 발행된 오늘, 그가 던졌던 질문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우리를 수용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출처 : 에이블뉴스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