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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지원인 유형 중 제2유형은 관련 자격증(속기사, 수어통역사, 점역교정사)이 있거나 관련 분야 1년 이상 경력을 갖춰야 한다. 이 유형에 해당하는 근로지원인이 속기사 자격증은 없고 수년 간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문자통역으로 속기한 경험과 경력이 있음에도 이는 제2유형에서 제시한 ‘관련 분야 1년 이상 경력’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박관찬 기자
청각장애가 있는 근로자 A 씨의 근로지원인으로 근무하고 있는 은경(가명) 씨는 최근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은경 씨가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근로지원인의 휴가와 자격 등 처우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민낯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장애인근로자가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지원인력인 근로지원인 제도가 실제로 어떤 실정인지 더인디고에서 취재했다.
☐ 신혼여행을 개인 연차로 가라고?
은경 씨가 신혼여행을 다녀오게 되는 관계로 근로지원인 사업 수행기관인 ㄱ기관 담당자에게 이야기하자, 담당자는 은경 씨에게 ‘개인 연차’를 쓰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단다. 5일의 신혼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은경 씨는 개인 연차 5일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경 씨는 “근로지원인으로 ㄱ기관과 계약할 때 작성했던 근로계약서를 보니까 분명 경조사가 있었다”면서 “담당자에게 근로계약서상의 경조사 이야기를 하니까 그제야 다시 알아보고 받아들여졌는데, 잘못하면 개인 연차를 아깝게 5일이나 소진해서 신혼여행을 다녀올 뻔했다”고 했다.
은경 씨처럼 근로지원인으로 근무하고 있는 B 씨는 “근로지원인은 장애인근로자에게는 꼭 필요한 지원인력이지만 연차와 같은 기준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서, “장애인근로자가 연차를 쓰면 근로지원인은 출근해도 지원할 장애인 근로자가 없으니까 강제로 출근을 하지 않게 되고 근로지원을 하지 않은 만큼 급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B 씨에 의하면 근로지원인이 한 달 출근하면 월차가 하나 생성되고, 그렇게 누적된 월차를 근로지원인의 휴가로 사용할 수 있다. 유급휴가지만, 근로지원인의 휴가와 별개로 장애인근로자가 연차를 쓰는 경우에는 근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시급 기준으로 급여가 제공되는 근로지원인 입장에서는 급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B 씨는 “월급이 딱 정해져서 들어오면 좋은데, 월마다 공휴일과 같은 출근하지 않는 평일로 인해 출근 일수가 매월 다르고 장애인 근로자가 연차를 쓸 수도 있으니까 어떤 월에 공휴일도 많고 근로자도 연차를 쓰면 근로지원인 급여는 그만큼 줄어든다”면서 “장애인근로자와 근로지원인이 연차를 맞춰서 같이 쓰면 그래도 다행이긴 한데, 개인 일정을 그렇게 맞추기도 어려우니까 이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강조했다.
☐ 자격증 없이 근로지원 해왔는데, 갑자기 자격증 갖춰야 된다니?
신혼여행을 개인 연차로 다녀올 뻔 했던 문제는 잘 해결되었지만, 근무지로 복귀한 은경 씨에게 ㄱ기관 담당자가 이번에는 ‘속기사 자격증’을 제출해달라고 했다. 2년 가까이 근로지원인으로 근무해 온 은경 씨에게는 그야말로 뜬금없는 요청이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안내하고 있는 근로지원인은 총 3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제1유형은 단순히 근로지원인 업무가 가능한 사람이다. 제2유형은 자격증(한국수어통역사, 점역교정사, 속기사)을 가지고 있거나 관련 업무에 1년 이상 종사한 자이며, 제3유형은 재활, 교육, 심리, 의료, 기술 및 사회사업분야의 전문학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했거나 사회복지사와 직업상담사,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특수교사, 정신보건전문요원 등의 관련분야 가진 자, 또는 직업재활실시기관에 2년 이상 종사하였거나 장애인고용사업장에 3년 이상 종사한 사람, 1년 이상을 근로지원인으로 활동하였으며, 공단의 발달장애인 근로지원인 양성과정을 이수한 자로 분류하고 있다.
은경 씨가 근로지원하는 장애인근로자는 청각장애인으로, 문자통역과 같은 속기를 통한 근로지원을 필요로 한다. 앞서 설명한 근로지원인의 세 가지 유형 중 제2유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은경 씨는 속기사 자격증을 취득하지는 않았지만,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청각장애학생이 강의를 원활하게 들을 수 있도록 수년 간 문자통역으로 ‘속기’ 지원을 한 경험과 경력이 있다.
더구나 현재 은경 씨로부터 근로지원을 받는 장애인 근로자도 지금껏 은경 씨의 근로지원을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2년째 계약을 갱신하며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다녀온 은경 씨에게 갑자기 ㄱ기관에서 제2유형에 해당하는 속기사 자격증을 제출해달라고 한 것이다.
은경 씨는 “저는 속기사 자격증이 없으니까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문자통역했던 경력을 제출했는데, ㄱ기관에서는 이를 ‘관련 분야 1년 이상 경력’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면서 “‘속기’라고 해서 속기사용 키보드로만 하는 게 아니라 일반키보드로도 충분히 속기가 가능한데, ‘속기’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현재 근로지원인으로 근무하고 있는 다른 경우를 취재해본 결과 은경 씨와 비슷한 경우가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근로자가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수어통역을 할 수 있는 근로지원인, 즉 제2유형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근로지원인은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갖추지 않은 채 근로지원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수어통역이나 속기사 등 전문 자격증이 없어도 제2유형의 근로지원인으로 근무하는 근로지원인이 더러 있음에도 갑자기 은경 씨에게만 자격증을 갖추라고 한 것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근로자 C 씨는 “시각장애를 근로자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제2유형에 해당하는 근로지원인으로 점역교정사를 갖출 필요는 없다”면서 “시각장애인 중에 점자를 모르는 경우도 있을 뿐더러 오히려 제1유형으로 행정 업무지원을 더 필요로 하는 경우가 더 많을 텐데, 솔직히 근로지원인을 유형별로 나눈 건 자격증 여부에 따라 근로지원인의 시급을 달리하는 것 외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제2유형에 해당하는 근로지원인 중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경우에는 제1유형이 최저임금을 받는 것과 달리, 최저임금의 1.5배로 시급을 적용하고 있다.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지원인으로서의 ‘전문성’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B 씨는 “속기사나 수어통역사를 근로지원인으로 하더라도 청각장애가 있는 근로자가 근무시간 내내 문자통역이나 수어통역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오히려 속기사나 수어통역사 근로지원인에게 행정업무지원을 요청했다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걸 보고, 어디까지 근로지원을 요청하고 요청하지 않아야 되는지 고민하게 될 때가 많았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은경 씨는 “올해 안으로 속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어려우니까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하고, 지금 근로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인근로자도 갑자기 다른 근로지원인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장애인근로자와 근로지원인의 업무환경과 특성에 맞게 어떤 지원과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도적 개선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잘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출처: 더인디고 https://theindigo.co.kr/archives/63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