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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우리는 여전히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변화를 꿈꾸며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권영화제 활동가들도 그 중 하나다. 이들은 영화를 통해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문제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인권영화제를 위해 꾸준히 활동해 온 고영주 활동가를 만나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해왔는지, 이 일의 즐거움과 어려움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2019년부터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는 고영주 활동가. ©김난희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서울 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고영주입니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에서도 ‘요다’라는 이름으로 길동무 활동을 하고 있고요, 부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봄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활동가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위키백과는 인권영화제를 “사람답게 살기 위한 권리의 일환인 표현의 자유를 가질 것을 주창하며 사전심의, 검열행위를 거부하고 인권 관련 영상들을 상영한 한국 최초의 행사”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조금 쉽게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맞아요. 저도 읽어봤는데, 짧은 문장 안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어려워진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 풀어서 말해보자면, 인권은 ‘사람의 삶’ 그 자체잖아요. 그래서 서울인권영화제는 사람의 삶 자체인 인권을 지키기 위한 모든 연대 활동,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들을 잊으면 안 되는지, 어떤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인권 단체예요.
인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시위나 집회 활동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고, 인터뷰 기사를 쓰기도 하고요. 저희는 영화로 그 일을 하는 거죠. 사람들한테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세상에 이런 일들이 있고, 이렇게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알리는 거죠.
그런데 이런 상황을 널리 알리자면 되도록 많이 사람이 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 영화제는 심의를 거부를 하고 있어요.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리고 인권영화제의 모든 작품은 무료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심의를 거부하면 영화관에서는 상영을 할 수는 없지만 2년에 한 번씩 축제처럼 영화제를 열고 있어요.
행사 기간 말고도 준비하는 기간이 있을 것 같은데, 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는 기간은 1년 동안 얼마나 되나요?
영화제 자체는 보통 4일 정도 진행되는데, 준비 기간은 훨씬 길죠. 그 전해 가을에 모여서 함께 교육을 받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고, 약속 같은 걸 만들기 시작해요. 이런 시간이 지나면 출품작들이 쏟아져 들어와요. 그 영화들을 모두 본 뒤에 상영작을 선정하고, 작품에 한글 자막을 달고, 수어 통역을 녹화해서 붙이고…. 준비할 게 정말 많죠. 행사 프로그램을 짜고 알리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기간으로 치면, 한 번의 영화제를 위해 10개월 정도는 어떤 식으로든 일하고 있는 것 같아요.
활동가님이 인권영화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친구들이 이 영화제에서 활동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어요. 뭔가 처음 접하는 장면들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도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음성 해설이 나오는 영화라든가, 청각장애인이 대화하는 장면을 이해할 수 있게 그 문자 통역이 이루어지는 걸 인권영화제에서 처음 봤거든요. 그런 장면들을 보고 절말 놀라고 매료되었어요. ‘아, 이런 게 있구나!’ ‘이런 게 접근권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저도 친구들처럼 멋진 활동을 하고 싶어 참여하게 되었어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공부나 준비를 하셨나요?
공부나 준비가 따로 필요하지는 않아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들은 본인이 하고 싶다고 신청을 하면 대부분 할 수 있어요. 다만, 여기 일이 글 쓸 일이 정말 많은데 저는 글쓰기를 좀 어려워해요. 그래서 평소에 글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오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동안 활동하면서 준비한 인권영화제 작품 중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정말 많은 작품이 떠올라요. 그중에서도 제가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같이 비를 맞으며(2022, 김설해 감독)>예요. 지금 한화 본사 앞 CC-TV 철탑에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어요.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영화 생각이 많이 나요. 저희 영화제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같이 비를 맞으며>를 상영한 적이 있는데, 그때 김형수 지회장이 “이런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삶이고, 인간이 만들어 가야 될 세상이다” 이런 생각으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얘기했었거든요. 그래서 요즘 또다시 고공농성 하는 거 보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나 영역이 있나요?
요즘에는 ‘공간’을 다룬 영화에 관심이 많아요. 영화제 일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건데,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공간, 혹은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억울하게 쫓겨나는 일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런 현실을 다룬 영화들을 보다 보니, 요즘은 ‘공간을 지킨다’는 주제에 더 눈이 가는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야외에서 영화제를 개최했던 작년 6월의 혜화 마로니에 영화제인 것 같아요.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어렵지 않은 분야가 없었잖아요. 인권영화제도 계속 온라인 상영회, 제한적인 실내 상영회 같은 활동만 해야 해서 모두가 지쳐 있었어요. 그러다가 마로니에에서 직접 관객들을 만나고 대면 활동을 하니까 에너지가 충전되고 너무 좋더라고요. 준비할 때도 광장에서 영화를 틀고 사람들을 만날 거라고 생각하니까 일은 힘들어도 모두가 너무 신이 나서 웃으면서 재미있게 준비했어요.
올해도 인권영화제 활동을 하실 예정인가요? 영화제 일정이 구체적으로 나왔나요?
네,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하고 싶어요. 그런데 4월까지는 계속 탄핵 집회에 나가느라고 실질적인 업무가 마비된 상태였어요. 모든 인권 단체가 매주 광화문에 모이느라고 계획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죠. 그래도 올해 남아 있는 일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볼 생각입니다. 영화제는 26년 6월 예정인데, 정확한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사실 그것도 작년 영화제를 준비할 때였어요. 야외에서 행사를 하는데, 야외 영화제 경험이 있는 스탭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날씨도 그렇게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올 줄 몰랐죠. 그런 긴급한 돌발 상황에 대처하느라 땀을 엄청 흘렸죠. 작년은 가장 재미있었지만 또 가장 힘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는데 가장 힘이 되는 분은 누구인가요?
저희 상임활동가 ‘고운’ 님이랑 ‘소하’ 님이에요. 자원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거든요. 일이 힘들어도 두 분 덕분에 서로 웃으면서 일할 수 있게 되는 게 정말 신기해요. 의도하신 건지 원래 재미있는 분들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인권영화제의 문화가 된 것 같아요. 두 분이 계셔서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일에 대한 가족이나 친구, 주변의 평가는 어떤가요?
처음에는 제가 잠도 잘 못 자고 일하느라 힘들어하니까 “너무 힘들고… 자원 활동인데 그만 해라” 이런 반응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제가 영화제에서 일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2019년에 시작했는데, 아직도 하는 걸 보면 앞으로도 계속 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네가 힘드니까 그만 했으면 좋겠어” 하던 분들이 영화제를 보고 가시면 “아, 이런 일을 하는 거였구나!” “되게 멋있다!” 이렇게 응원을 해주시니까 용기가 생기고 계속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 일을 할 때 지켜야 할 나와의 약속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상임활동가를 최대한 도와주자’, ‘상임활동가가 바쁘지 않게 이제 최선을 다하자’ 이게 나와의 약속이었어요. 그런데 제 일이 바빠지면서 영화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어요. 다행히 새로운 자원활동가들이 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생각이 좀 바뀌어서 ‘최대한 오래 하자’ 이렇게 다짐하고 있어요. 내가 멀리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최대한 오래, 가늘더라도 길게 남아 있자, 그런 생각을 해요. 엄청나게 높은 밀도가 아니더라도 지박령처럼 오래오래 남아 있자고 나와 약속하곤 합니다.
활동가님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저는 ‘다정한 사람이 되자’가 좌우명이에요. 최근에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일도 있었고, 돌봄교사로 일하면서 많은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때도 가장 많이 느끼는 게 정말 다정한 게 최고다, 하는 거예요. 결국에는 다정함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매일 밤 내가 다정하지 못했던 순간에 대해서 반성을 해요. 내가 오늘 어떤 아이에게 다정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내가 오늘 엄마에게 다정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고 말예요. 저는 모든 건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다정함을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다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 일을 하고 싶은 청소년은 지금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영화제에서 일을 하고 싶은 청소년이 있으면 일단은 영화를 많이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영화제는 사람들이 직업으로 갖기도 하지만 경험 삼아 잠시 하기도 하거든요. 부산국제영화제 스탭으로 3개월 일한다든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제 기간 동안 자원활동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이런 경험을 두루 쌓으면 좋겠지요.
그리고 저도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지만 보고 난 뒤에 금방 날아가 버릴 때가 많거든요. 보긴 봤는데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거나, 메시지가 잘 기억이 안 나거나 하는 일이 있잖아요. 그래서 영화를 본 뒤에는 짧게라도 기록을 해놓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언제 어떤 영화를 봤고 어떤 걸 느꼈다, 아니면 명대사 한 줄이라도 기록을 해두면 쉽게 휘발되지 않으니까 좋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말씀드린 것처럼 영화제 활동 중에는 글을 쓸 일이 참 많아요. 그래서 평소에 일기를 쓴다든지, 내가 본 영화에 대해서 감상평을 써본다든지, 요약을 해본다든지, 이런 습관을 들이면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무조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는 지금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저는 영화제 활동이 너무 재미있고, 사부작에서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도 정말 즐거워요. 어린이들을 만나는 게 너무 좋고, 그 일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수입은 불안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해요. 제가 행복하니까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는 하나도 신경이 안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직장에 다니고 많은 월급을 받지만 일주일이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고 주말만 기다리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물론 그 친구들도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쉬는 날도 빨리 출근하고 싶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복 받은 사람이라고 느껴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고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고영주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가 단지 감동을 주는 걸 넘어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녀처럼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는 일도 내가 진로를 고민할 때 생각해볼 수 있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정확히 어떤 길을 가게 될지 모르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 나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출처 : 에이블뉴스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