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료실 > 이슈와 칼럼

이슈와 칼럼

이슈와 칼럼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장애인, 재난 속 더 깊은 약자
2025-04-30 19:21:07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525
106.246.188.157
재난은 모두에게 닥치지만,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닥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사회학자들은 "재난불평등"(Disaster Inequality)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사회적 취약성(vulnerability)이 클수록, 재난이 가져오는 피해는 더욱 심각하고 치명적이다. 빈곤층, 노인, 이주민,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인은 재난 상황에서 구조적으로 더 큰 위험에 처하며, 살아남을 기회조차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재난은 단순히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용하는 사회적 사건이다.

세계 재난에서 드러난 장애인의 위기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2005)=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후 미 연방감찰관 보고서는 전체 사망자 중 약 73%가 60세 이상 고령자 또는 장애인이었다고 밝혔다.

 이 충격적 결과는 "Post-Katrina Emergency Management Reform Act of 2006"을 통해 장애인을 재난 대응의 핵심으로 포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FEMA(연방재난관리청)는 모든 긴급대응 계획에 장애인 접근성과 참여를 의무화했다.

일본 동일본 대지진 (2011)=일본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장애인 사망률은 비장애인의 2.1배에 달했다. 이후 일본은 "재해약자 지원법"(2013)을 제정하여, 각 지자체가 장애인을 위한 개별 대피 지원계획을 수립하도록 법제화했다.

영국 Civil Contingencies Act (2004)=영국은 이미 "Civil Contingencies Act"를 통해 모든 재난 계획에 사회적 약자의 필요를 반영할 것을 법으로 규정했다. 지역정부는 장애인 단체와 협의해 대피 계획을 수립하고, 훈련과 점검을 실시한다.

호주 블랙서머 산불 (2019-2020)=호주는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까지 이어진 대규모 산불, 이른바 "블랙 서머"(Black Summer)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다.

이 기간 동안 장애인 단체들은 정부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애인 지원단체 PWDA(People with Disability Australia)는 "긴급경보 시스템이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피소 중 상당수가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안정 공간(sensory space)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호주 정부는 이후 'Royal Commission into National Natural Disaster Arrangements」(2020)' 최종보고서를 통해 "재난 대응에서 장애인 접근성과 참여 보장을 명시적으로 강화" 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호주는 재난 경보를 음성, 문자, 시각 신호 등 다채널로 제공하고, 장애인용 대피 경로를 별도로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호주 사례는 대규모 재난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시스템적 무시를 경험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난 대피요령의 한계 '장애인은 여전히 사각지대'

우리나라도 '장애인 재난안전 대책'이 존재한다. '장애인등 편의증진보장법' 제10조(재난 시 편의제공),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4조의2(재난취약계층 보호 조치). 그러나 실질적인 적용은 여전히 미흡하다.

실제로 서울시의 2022년 모의대피훈련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제공이 부실했고, 시각장애인용 안내 유도라인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장애인이 혼자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또한, 전국 재난대피소 80% 이상이 휠체어 사용자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조사 결과(국민권익위원회, 2021)가 발표되었다. 이는 장애인이 "재난 시 대피"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방치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재난 피난 규정의 문제

 장애인 대피지원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은 취약계층 보호를 명시하고 있으나 대피 보조 인력, 경로 확보, 접근 가능한 대피소 구축 등 구체적 실행 지침이 미비하다.

 장애인 스스로 긴급대피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개별지원계획(Personal Evacuation Plan) 의무화 조항이 없다. 즉, 한국의 장애인 재난 피난 규정은 존재는 하지만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다.

 재난 속 약자를 중심에 둘 때 모두가 안전하다 외국 사례가 보여주듯, 장애인을 단순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재난 대응의 설계자, 참여자로 삼을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체적 조치가 시급하다

- 비상 알림은 수어, 자막, 점자, 다국어 음성으로 제공

- 대피소는 휠체어 접근 가능, 전동보장구 충전 가능 설비 기본화

- 장애 유형별(시각, 청각, 지체, 발달장애 등) 맞춤 대피 매뉴얼 구축

- 장애인 당사자 참여 기반의 재난대응 체계 수립

- 모든 지자체에 장애인 대상 개별 대피계획(PEP) 의무 수립

 재난은 준비한 만큼 인명을 살리고, 준비하지 않은 만큼 인명을 잃는다. 장애인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것은 '선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존을 위한 구조적 필수 조건이다.

장애인을 중심에 두는 재난 대응 체계가 구축될 때, 비로소 우리는 "누구도 버려지지 않는 사회"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