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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외부칼럼] ‘MB’가 전파하는 능동적 복지의 허구와 장애인 빈곤화
2010-02-02 14:34:00
관리자 조회수 2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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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전파하는 능동적 복지의 허구와 장애인 빈곤화

 

안진환(장애인사회연구소)

 

<외모가 혐오감을 주거나, 심한 냄새가 난다. 철에 맞지 않은 옷을 입거나, 옷이 늘 더럽다.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늘 같은 옷을 입는다. 외모관리가 어딘지 어설프다.>

오해하지 마시라. 위의 내용은 1970년대식 간첩식별볍도 아니요, 그렇다고 연애기획사에서 기준미달의 연예인 지망생을 걸러내는 기준표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힘이 되는 평생친구(보건복지가족부 홈페이지에 내걸린 표어)’를 표방하는 보건복지가족부가 기초생활수급자들의 근로능력을 평가한답시고 시행하고 있는 ‘보건복지가족부고시 제2009-243호, 근로능력평가의 기준 등에 관한 규정’ 중에서 <활동능력평가 기준>의 한 내용이다. 올해부터 상기와 같은 기준으로 수급자를 관리하는 담당공무원이 평가해서 선정한단다. 막말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려면 담당공무원에게 좀 더 ‘병신스럽게’ 또는 ‘추하게’ 보여야 한다는 뜻인 듯하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빈곤화를 가늠하는 보편적 수치 척도의 하나인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비율을 보면 2007년 12월말 기준 전체 인구대비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비율인 수급률 3.2%에 비해 장애인인구는 6배 정도 높다. 전체 기초생활수급자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셈인데, 장애인 수급자들은 혹여 구청이나 주민자치센터를 방문하게 될 일이 있으면, 부디 씻지도 말고 빨려고 뭉쳐둔 옷가지를 애써 꺼내 입거나 9대1 가르마를 하고 갈 일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해 주는 사회보장제도로, 지난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이념은 한 국가의 복지정책은 단순히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 끼니의 시혜를 베푸는 전근대적인 방식이 아닌,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불행이나 능력에 두지 않고 사회적 환경과 시스템 등 국가가 함께 해야 한다는 보다 적극적인 개념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MB정부 이후 복지정책은 ‘능동적 복지’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일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부터 따지게 됐다.

그렇다면 어쨌거나 ‘능동적 복지’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보건복지가족부의 근로능력평가는 매우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급자의 입장에서는 그 발상이 영 꺼림칙하고 그 결과가 우려스럽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지적하고 싶은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활동평가> 기준의 반인권성과 편견이다. 한 개인의 외양을 보고 근로능력을 판단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 그리고 불과 한 두 번의 면접만으로 집중력, 근로의욕, 근성이나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능력여하를 결정하겠다는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에서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은 의례 더럽고 혐오스러우며 악취를 풍길 것이라는 국가 시스템 운영자들의 황당한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낸 꼴이다. 짐작컨대, 현재 우리 사회의 국가적 시스템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가난뱅이들은 지저분하고 산만하며, 책임감 없고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아니다. 이러한 발상은 어쩌면 맨주먹으로 시작해 국내 재벌기업의 CEO로, 불도저라는 닉네임으로 한 시대를 자수성가의 대명사로 추앙받았던 성공신화의 주인공인 MB의 눈에 들려는 아랫사람들의 고육지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밤낮 없는 일을 통해 신화를 창조한 MB로써는 일하지 않고 국가에 손을 벌리는 사람들을 좀체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해는커녕 MB의 눈에 가난한 자들은 국가의 알토란같은 예산이나 좀먹는 하찮은 존재들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그는 이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가난한 고학생에서 대통령까지, 신분상승의 극한을 몸소 실천하고 경험한 그에게, 지난날의 자신처럼 가난하지만 현재의 자신처럼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채 국가에 손 벌리는 국민들에게 너그럽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듯싶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능동적 복지’이며, 그의 뜻을 따르는 종복(從僕)들이 짜낸 꾀가 ‘근로능력평가의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일 것이다.

MB정부의 불변의 가치, “능동적 복지”는 복지에 대한 국민의 권리보다는 노동의무를, 복지영역에 대한 공공성 확충보다는 시장 원리적인 접근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 영역의 기업화를 지향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회적 기업 장려, 희망근로사업 등 이른바 노동연계형 복지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일 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노동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만 ‘국가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겠다는 것이다. 물론 장애인수급자도 예외는 아니다.

나 역시 원칙적으로는 장애인도 일을 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의 동의에는 간단하고 명료한 전제가 따른다. <장애인도 일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제도의 개선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의 개선 없이 그저 복지에 대한 사회권(social rights)을 획득하려면 일하라, 노동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들은‘권리’조차 없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능동적으로 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칫 시스템의 일방적인 강요거나 선의(善意) 뒤에 감춰진 무시무시한 폭력일 뿐이다.

현재 ‘능동적 복지’는 양적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대적 사명에만 복무할 뿐이다. 정부는 노동을 통한 자기실현이 가능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 구조와 환경 개선을 위한 고민 대신에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전락한 노인들과 장애인들에게 저임(低賃)의 ‘사회참여형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신에 수급권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우리 장애인들은 요즘 능동적 복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변을 돌아보면 웬일로 장애인들에 대한 일자리가 차고도 넘친다.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사회적 기업들 혹은 사회적 기업이 되고자 하는 곳에서는 일자리를 원하는 장애인들을 찾으려고 혈안이다. 세상에, 장애인이 노동시장에서 이처럼 환대받기는 처음인 듯하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빚 좋은 개살구다. 사회참여형 노동시장에서는 능력이나 경력, 이른바 스팩(승자독식 시대의 경쟁을 내면화한 사람들을 반대하지만) 따위는 상관이 없단다. 너나없이 조건은 똑같다. 임금조건은 90만원에 4대 보험 가입이다. 그나마 1년 혹은 2년 단위의 계약직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조건들이 사회참여형 노동시장에 정부가 지원하는 급여조건이기 때문이다. 소위 나쁜 일자리(bad job)의 전형이라 하겠다.

지난 10년 좌파정권이 박아 놓은 대못을 모두 솎아내겠다고 게거품을 무는 분들이 왜 복지정책에서만은 그 대못에 슬쩍 옷을 걸고 있는지 모를 일지만, DJ정부의 생산적 복지, MH정부의 참여복지 혹은 사회투자전략을 이어 MB정부 하에서 강조되는 노동연계복지 또는 능동적 복지는 이름만 다를 뿐 기본적 개념과 운용의 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쉽게 말하면 복지제도를 너무 잘 만들어놓으니까 일할 사람들이 수급비나 타먹고 논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모성 지출을 줄이고 개인들이 일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의 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복지정책을 전환해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재가 ‘복지병’이 만연하여 <생산적 복지>가 주창되었던 80년대 미국, 영국보다 복지예산이 많거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 리 없는 데도 말이다.

복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인간존중의 원칙이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치와 존엄을 보장받을 때 진정한 복지사회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 시스템이 작동시키고 있는 ‘노동연계복지 또는 능동적 복지’는 사람의 존엄과 가치보다는 노동능력을 우선시하고 있다. 아직 복지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도 못하고 정부의 재정부족으로 실질적인 최저생계비도 보장해 주지 못하는 나라에서, 오직 생산을 위한 효율성만을, 인본주의보다는 경제적 신자유주의를, 인간의 존엄과 가치보다는 능률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장애인들 중에서 약 20%의 사람들은 장애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장애등급을 받기 위해 시험대에 올랐던 것처럼 노동능력의 있고 없음을 판정받기 위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라야 할 듯하다. 모욕적이고 억울하지만 이 사회에서 구차한 생명줄 부지하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는 일이다. 부디 씻지도 말고 빨려고 뭉쳐둔 옷가지를 애써 꺼내 입거나 9대1 가르마를 하고 갈 일이다. 좀 더 병신스럽게, 병신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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