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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외부칼럼] 서울시가 주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금의 촘촘한 포위망을 뚫고 자립생활운동을 복원하자
2010-02-03 14:41:00
관리자 조회수 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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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주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금의

촘촘한 포위망을 뚫고 자립생활운동을 복원하자

 

안진환(장애인사회연구소)

 

서울시가 지난 1월 25일 드디어 16억7,100만원 규모의 주인공들을 가려내는 2010년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기관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종합해 보면 국고보조사업(총 6억원, 개소당 1억5,000만원) 4개 기관과 시자체사업(총 10억7,100만원, 개소당 5,200만원) 20개 기관이 목을 매며 ‘이 눈치 저 눈치’ 여기저기 줄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국고보조금 2억4,000만원을 제외하면 고작 14억3,100만원을 두고 서울의 50여개 센터가 난리법석을 떤 우스운 형국이다. 2010년 서울시 예산 총액이 21조2,573억원이니 서울시 전체 예산에서 자립생활센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0.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금액이다.

아마도 이번 심사의 초미의 관심은 IL센터 국고보조사업 예산을 2009년 12억원에서 2010년 15억원으로 증액하며 20개소에서 25개소(서울, 경기, 대구, 경북, 경남 각 1개소)로 늘리면서 지원센터의 향배와 특정 장애유형 센터의 분리 지원으로 모아졌을 게다. 사업과 서비스중개기관 역할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굿잡센터가 국고보조사업 지원기관 대열에 합류하며 ‘상처뿐인 영광’을 안았을 뿐 전반적으로 자립생활센터는 별반 소득없이 변죽만 울리며 마침표를 찍었다. 작은 몸짓으로 행동해보지도, 외쳐보지도 못했다. 속절없이 화풀이를 주(酒)님에게 해댄 것 외에는 말이다.

한 가지 부연하고 넘어가자. 나는 별 것 없는 놈이긴 하나 자립생활센터가 부흥하길 원하며, 과문하지만 자립생활이 발전하고 강성해지길 희망한다. 다만 자립생활센터가 좌표를 잃은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2008년과 2009년도 연이어 실시한 자립생활센터 ‘평가의 무력’ 앞에 철저하게 짓밟혔던 IL은 겨우 몇 푼 되지 않는 지원금에 목매이며, 변변한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센터의 운영에 전전긍긍하는 꼴이란 ‘고양이 앞에 생쥐’ 신세나 다름 아니다. 솔직히 인정하자.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서울시는? 지금의 서울시는 IL센터 길들이기를 위한 전형적인 수법인 센터 평가, 그리하여 획일화된 사업 수행과 줄 세우기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센터의 운동성을 약화시키기 위한 지원금 균등 분배 등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횡을 일삼으며 센터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2008~2009년 연이어 야심차게 실시한 센터 평가는 크게 네 가지 정도의 부정적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인적․물적(총량) 부재 현상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센터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아량을 베풀겠지만)제재의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다. 이른바 ‘솎아내기’, ‘고강도 옥죄기’ 수법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데,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중증장애인 고용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센터에게는 치명적이다.

둘째, 정확한 평가목적과 평가 이후 계획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가결과 우수센터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나 동기부여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을 평가하는 목적과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조차 없이, 사회복지계에 널려있는 평가 잣대로 열악한 센터의 실정을 외면한 일방적인 평가만을 실시하여 활동가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고 하향평준화를 재촉할 수 있다.

셋째, 자립생활센터 및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일반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양적평가 중심의 평가에 치우쳐 질적평가(회원수, 자립생활 및 탈시설 견인 수, 장애인활동가 근속기간, 업무의 질 등)를 외면하고 있는데,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일반적 고용 특성에 대한 고려와 평가도구가 전무한 상태에서 자립생활 본연의 기능을 관찰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매년 실시하는 센터평가는 센터의 피로감만 누적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안타까운 사실은 ‘평가’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 탓에 센터 업무가 마비될 정도이며, ‘평가’에 대한 두려움과 과다한 서류준비로 자칫 자립생활센터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할 소지가 농후하므로 3년 단위의 평가가 바람직하다. 제발 사회복지시설만큼의 평가기간을 요구하면 서울시에 맞아 죽을라나?

서울시는 지금도 ‘자립생활센터’를 손보지 않으면 안정적인 시정운영이 불가능하다고 연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에 대해 묻는다. “장애인복지관을 비롯한 그 많은 장애인복지시설이 장애인의 인권을 짓밟고 소위 ‘선생님’으로 군림하며 휘두르는 교활한 권력에 누가 저항했다고 믿는가?” “마땅히 주인이어야 할 장애인의 권리는 외면한 채 장애인을 실적관리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며, 꼬박꼬박 자신의 예금통장 잔액만 불리는 종사자의 비도덕성이 장애인의 삶의 질과 밀접한가?” “장애인의 지역사회참여를 주도한 계층이 사회복지사인가, 장애인당사자인가?” 답은 의외로 명료하다. ‘장애인당사자’에 대한 지원 강화다. 장애인자립생활에 대한 보편적 서비스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수행할 생각은 없고, 기존 논리로는 장애인복지관과 시설밖에 고수할 수 없기 때문에 서울시는 힘없는 자립생활만 갖고 난리를 떠는 것이다.

고립을 자초하는 각개약진이거나! 아니면 ‘자립(IL)산성’의 진을 쌓거나!

니들 맘대로 하세요!

그렇다면, 자립생활 진영의 조용하지만 작은 변화는 올 수 있을까? 유비와 손권 연합군의 제갈량이 살아와서 동남풍이라도 불러오면 모를까 쉽지만은 않을 게다. 기막히지만, 어쩔 수 없다. 자립생활만의 성을 쌓고 스크럼을 만드는 수밖에. 나는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신자유주의(시장우선주의 혹은 능동적 복지) 관점에서 이해하면 자립생활센터의 현 과제는 예산의 ‘파이’를 키우고 ‘적절한 분배’를 통해서 양질의 센터를 육성하는 길 외에는 뾰족한 수가 별로 없다는 현실을.

우리 모두는, 장애인 사회의 문제는 전문가나 시설론자, 재활론자 등에 맡겨두어야만 한다는 미신을 장애대중의 건강한 운동을 통한 각성, 그리고 거부의 몸짓으로 깨부순 경험이 있다. 60년동안 지속되는 시설과 재활 정책을 넘어서는 참여·선택·결정·당사자주의의 자립생활 체제는 우리 앞에서 꿈틀거리기만 했지 우리가 꿈꾸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 자립생활의 이념과 가치를 이제 막 실현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립·건강·일자리·주거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자립생활은 허울에 불과하지 않은가. 소장들이 지역의 ‘식읍(食邑)’ 챙기기에 여념 없는 IL은 반쪽은 죽은 목숨이다. 장애대중 풀뿌리로부터의 압박과 강제 없이 정부와 재활론자, 전문가 집단이 스스로 변한 일이 있던가.

‘자립생활’로 혈기왕성했던 IL진영은 ‘장애인복지법 개정’ 운동이후부터는 수세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장애운동도 공세(攻勢)와 수세(守勢)를 반복하기는 해야 한다. 문제는 너무 빨리 수세로 돌아섰다는 데 있다. 꼼꼼하게 센터 내부나 수년째 계속되는 사업들을 관리하라고 강제하는 꼴인데, 장애대중에게는 낭패감을 안겨주기 십상이다.

잘 아시다시피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는 축구로 말하면 공격적 성향(골잡이)이 강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수비수 역할을 맡겨 놓았으니 문제가 터진 게 아닌가. 결국 장비는 술 먹다가 부하들을 때려 부하들에게 칼을 맞고 죽는다. IL의 장애대중은 예를 들면, 어떤 이슈를 만들어내서 의제화하고 공략할지 방법을 찾고 공론화하며 궁리하는 공세적 일들을 맡기면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너무 공격을 잘해서인지 ‘장애인복지법 개정’ 운동에서 거둔 혁혁한 성과 이후 IL은 장애운동(간헐적으로 존재를 드러낼 만큼의 움직임이 있기는 했지만)과 관련해서는 개점휴업 상태다. 몇 년 동안 자신의 성(城) 안에서 안분지족하며 웅크리고 있는 것인지, 기회를 엿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칫 성을 지킬 능력을 상실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수세 기간이 너무 길면 보신과 무기력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결국 자립생활이 필요한 장애대중은 어느 틈에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장애대중도, 장애인단체와 지역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이렇게 묶기조차도 버거운 여러 경제·사회적 ‘약한 고리’들이 너무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을까.

IL의 행보에 대한 주위의 우려는 “IL은 사업기관과 동일시되었고, 활동보조서비스 중개기관과 수익창출이 자립생활 향유의 권리를 대체했다.” “기세등등한 IL소장은 사업 만능주의를 일삼고, IL센터는 대놓고 ‘양지’를 쏘다닌다.”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대정부 공세적 대응은 삼간 채 소극적인 로비와 타협에만 열중할 뿐 한 줌의 권력에 도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따갑다. 이에 대해 여러 분석과 대책이 곳곳에서 나온 바 있지만, 핵심을 관통하는 뼈아픈 자성은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시설독재와 재활 만능주의가 장애인을 지배하던 시절, 우리는 이룰 수 없어 보이던 꿈을 꾸었고 한 줌의 욕심을 집어던지고 감성과 심장이 이끄는 대로 내달렸다. 우리는 자립생활에게 열렬히 구애했고, 자립생활은 우리의 사랑을 받아주었다. 그리하여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쳐 드디어 중증장애인이 주도하는 ‘자립생활 제도’라는 꽃이 활짝 피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의 가슴은 식어갔고 꿈은 쪼그라들었다. 아직도 우리 앞에 서서 버젓이 위용을 뽐내고 있는 시설과 재활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장애대중의 자립생활을 앞당길 수 있다는 순진한 꿈은 고급스러운 센터운영과 활동보조서비스 중개기관의 틀 속에 갇혔고, 멀어졌다. “이만하면 등 따시고 배부르다.”라고 자족하며 주저앉았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를 망각한 IL은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2010년에는 IL진영이 조직화되고 집단적인 방식으로 장애대중을 위해 ‘미친 짓’을 행동에 옮겼으면 한다. 센터가 수수료 챙기기에만 혈안이라는 ‘조롱과 비아냥거림’의 구설을 벗어나자. 장애대중도, 당사자주의를 외치는 진영도 진지를 다시 짜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나는 자립생활이 이제 막 출발점에 섰다고 본다. 작은 이익에 사로잡혀 자립생활을 변질시키기에는 IL진영은 아직 젊고 가야할 길이 멀다.

IL진영이여! 그 꿈이 비록 위험하고 무모해 보일지라도, 꿈꾸기를 포기하면 우리는 공무원과 시설장, 재활 신봉자들이 쳐놓은 ‘통제와 사육’의 대상으로 언제든지 전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흠결과 한계를 가졌기에 종종 눈앞의 소익에 미혹되면서 반목과 갈등으로 일방통행을 반복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미성숙과 부실, 나약과 불통의 실수는 우리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 우리들만의 화법으로 소통하며 해결점을 찾는다면 해법이 보이지 않을까. 서로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은 우리에게 있지 외부의 힘이나 작은 변수에 좌우되지 않는다. 중증장애인과 그들이 활동하는 지역사회 여건을 살리려는 ‘장애운동’이 자취를 감추는 순간, 우리 자립생활센터의 미래도 장애대중의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