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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외부칼럼] 장애인 정치참여와 정치세력화의 궁극적인 목적
2010-04-06 09:28:00
관리자 조회수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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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정치참여와 정치세력화의 궁극적인 목적

 

안진환(장애인사회연구소장)

 

6·2 지방선거가 5일로 'D-58일'을 맞았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세종시’와 ‘4대강’ ‘한명숙 재판’ ’보편적 복지‘ 등 현 정권에 대한 중간심판적 이슈라는 굵직한 선거변수가 '천안함 사건'에 묻히면서 도리어 지방선거의 핵심 변수로 급부상하는 듯하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증폭되면서 정치 쟁점화될 공산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반해 ‘무상급식’으로 한창 주가를 올렸던 ‘보편적 복지’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 무엇보다도 ‘무상급식’이 중앙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지방에서 먼저 이슈화된, 그야말로 ‘위’에서 던져진 의제가 아닌 ‘아래’로부터 생성된 ‘풀뿌리 의제’인데 뜻밖의 사건으로 물거품이 되는 듯해 안타깝다. 어쨌든 선거 결과의 상수이든, 변수이든 여야 정치권이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 2012년에 있을 대선과 총선의 중요한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4년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지방선거는 풀뿌리정치의 바로미터이며, 나아가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최소한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장애인당사자의 위상 변화와 유권자 파워 모색을 위한 한바탕 축제이기도 하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우리 사회는 총선과 지방선거를 통해 투표라는 민주적이고 직접적인 정치행위를 통해 각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짜릿한 경험을 하였다. 이러한 정치행위의 반복학습을 통해 각 집단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치는 후보를 지지하고, 당선시킬 수도 있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스스로를 진화시켜왔다.

장애인계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이미 여러 장애인단체들의 연대모임이 여기저기에서 결성되고 있는 듯하다. 분명한 것은, 장애인들은 그 어느 집단보다 잠재적으로 강력한 정치세력이라는 것이다. 약 235만명이라는 장애인 유권자 수만 보더라도 그렇지만, 장애인을 가족으로 두었다는 이유로 인해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차별을 겪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잠재적 지지세력까지 합한다면 그 어느 집단보다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이들은 또한 ‘장애인의 복지정책 개선’이라는 정책노선을 공통분모로 뭉칠 수 있다는 점도 정치세력화의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집단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동안 장애인의 정치참여와 정치세력화는 환경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많은 장애인들이 가장 기본적인 정치행위인 투표마저 본인의 의자와는 별개로 이동의 불편함과 접근권의 제한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이와 같은 거듭되는 상황은 급기야 많은 장애인들로 하여금 정치에 등을 돌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물론 ‘정치 무관심’도 한 몫 했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정치참여와 정치세력화에 대한 기본 테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해 11월 장애인사회연구소가 ‘서울시 거주 장애인 정치성향 및 유권자의식’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장애인유권자의 투표참여율은 2007년 대선의 경우 72.2%, 2008년 총선의 경우 69.9%, 2006년 지방선거의 경우 59.9%를 보이고 있다. 이는 비장애인 유권자의 투표 참여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경향이 분명한 점을 고려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다수 정치전문가들과 여론조사 기관은 6·2 지방선거의 투표율을 40% 중반 정도로 예측하는 수치를 연이어 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2010 지방선거 투표 의향을 묻는 질문에서 전체 응답자 중 67.5%가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응답결과가 실제로 적용된다면 유권자 파워집단으로서의 장애인계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정치세력’으로의 역할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장애인 유권자의 지지성향을 어떻게 정치집단의 ‘장애인정책공약’과 현실적으로 연계시키는가가 관건이다. 직접 참여의 방식이든, 간접 참여의 방식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집단의 의지와 뜻을 정치집단에 강력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요구하고, 요구사항이 현실정책에 실제로 반영될 수 있도록 감시하는가에 달려있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정치참여 실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던 장애운동도 민주화 쟁취투쟁으로 대표되는 시민사회운동의 영역 안에서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여 왔다. 장애운동은 이제 단순히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넘어 건강권, 노동권, 이동권, 문화권, 자립생활권, 주거권, 참정권 및 인권의 보장과 함께 모든 차별로부터 해방되고자 투쟁한다. 국가의 일상적 정책활동의 비좁은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시위와 농성 등의 운동과 같은 집단적 투쟁은 물론, 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장애운동의 당사자들은 늘 그렇듯이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현실정치의 중요한 세력으로 한 축을 담당하여 사회정책과 법률 안에서 작은 이익이나마 챙기기 위해 국가의 정치활동에 체제내(體制內)화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주변화와 고립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가로부터 분리되어 정책과 실천의 장기적인 변화와 장애인의 권한강화를 이끄는 의식화 활동에 집중해야 하는가? 아마 장애인복지에 종사하는 모든 단체나 개인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이는 고유의 선택이니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정치참여가 중요한 이유는, 또한 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정치적 결정이 가지는 중요성 때문이다. 예컨대 지방의회활동을 통한 장애인 관련 조례나 규칙의 제정은 직접적으로 장애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의 실상을 보면 왜 정치세력화가 필요한지 쉽게 실감할 수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청년실업문제’는 아마도 장애인이 천대받고 소외의 대명사로 치부되던 이른바 ‘막장 인생’으로 명명지어진 10여년 전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가 처참한 실상을 항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장애인들이 힘든 것은 개인이 못나서가 아니라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사회구조라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함께 외칠 수 있는가? 장애대중의 ‘지평 확대’와 ‘공동체 강화’의 소명을 우리 장애인들도 이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혼자서 외치면 ‘넋두리’이지만 여럿이 외치면 ‘길’이 되는 진리를 장애운동을 통해서 체득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최근 장애인이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17대 국회 비례대표 장향숙과 정화원, 18대 국회 비례대표 이정선, 정하균, 곽정숙으로 대표되는 장애인 정치가들은, 정치권에서 정략적으로 이용한 사회적 약자 배려차원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의회정치 일선에서 장애인 복지향상 뿐만 아니라 각종 의정활동에서 나름의 능력을 발휘하여 장애인 의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한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2006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도 총 46명의 장애인(장애인의 부모, 장애인단체의 장 포함)들이 당선되어 지방정치 무대에 등장하였다.

이렇듯 장애인들의 현실정치에의 적극적 참여의 한 배경에는 모든 장애계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열망과 노력이 큰 힘이 되었다. 노동자의 문제가 그랬고, 여성의 문제가 그랬으며, 미국 흑인의 문제가 그랬듯이 당사자의 문제를 하나로 결집하는 힘, 우리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관철시키는 힘, 가장 가까운 지름길은 역시 정치세력화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의 현실정치의 벽은 높고 단단하다.

이와 같은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 외에도 장애인의 정치세력화의 길은 매우 다양하다. 물론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방법이긴 하겠지만, 각종 선거에 입후보하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장애인들이 개발한 정책을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장애운동 등을 통해 획득한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되고 제시되는 정책공약인 만큼 선거 입후보자들이 반영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하여 채택된 정책공약들은 당선 후에 현실적으로 정책화하는 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촉구하는 등의 매니패스토 운동도 함께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장애인의 복지향상을 위한 장애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직접선거를 통한 장애인들의 정치세력화는 장애운동의 역량강화를 위해서도 매우 소중한 기회이며, 또한 미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장애인당사자들의 정치운동은 지역에서, 작은 공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 물론 정당 속에 들어가서 말이다. 당사자들이 실제로 지역에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면서 해당 지역의 장애인들과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반드시 정치운동의 새로운 길을 장애인당사자 활동가들이 열어가길 바란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의 질에 상당한 물질적, 사회적 개선의 효과를 안겨 주는 정치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지방정치에서 장애인의 정치참여를 통하여 장애인당사자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장애운동이 꾸준히 힘을 길러 장애인복지정책 개선에 구체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