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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기고] 국민의힘이 장애인의 날에 내놓은 공약, 권리가 삭제되었다
2026-04-21 22:11:58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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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민의힘이 장애인의 날에 내놓은 공약,

권리가 삭제되었다

 

국민의힘이 장애인의 날에 발표한 5대 장애인 공약은 교통비 바우처, 무장애 관광특구, 생활지원센터, 지원주택 등을 제시했지만, 장애인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보다 불편을 일부 완화하는 지원책에 머물러 있다고 이정훈 에큐메니안 편집장은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편집장은 “장애인 정책의 핵심은 시혜나 관리가 아니라 이동권·노동권·교육권·탈시설·자립생활을 국가 책임으로 보장하는 것이며, 이번 공약은 차별 구조를 바꾸는 권리 공약으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Chatgpt 이미지 편집 더인디고

  • 바우처와 관광특구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없앨 수 없다

[더인디고 = 이정훈 에큐메니안 편집장]

 

4월 20일, 국민의힘이 장애인의 날을 맞아 5대 장애인 공약을 발표했다. 이름은 꽤 그럴싸하다. “함께 누릴 일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이동과 주거, 생활지원과 예산 반영을 강조했으며, 특히 월 20만 원, 중증장애인은 보호자 포함 최대 40만 원의 교통비 바우처를 전면에 내세웠다. 무장애 관광특구, 원스톱 생활지원센터, 기초지자체별 지원주택 20호 확보도 함께 제시됐다. 꽤 세심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 공약은 시작점부터 어긋나 있다. 장애인의 삶은 여전히 차별과 배제의 구조 속에 놓여 있는데, 이번 공약은 그 구조를 바꾸는 대신 불편을 조금 덜어주는 쪽으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같은 날 거리에서 나온 언어는 전혀 달랐다. 거기서 요구된 것은 지원이 아니라 권리였고, 배려가 아니라 국가 책임이었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보고, 탈시설과 이동권, 노동권, 주거권, 자립생활을 국가 책임으로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공약은 권리를 보장하는 듯하지만, 실제 내용은 여전히 관리와 지원에 머물러 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을 하나 꼽자면 ‘프리패스 통합 바우처’다. 언뜻 보면 이동권의 강화처럼 읽힌다. 하지만 이동권은 교통비 지원액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교통 체계의 문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 접근 가능한 버스가 부족한 지역, 특별교통수단은 있어도 운행 인력과 배차 체계가 미비한 현실은 돈 몇 만 원 더 쥐여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권리는 국가가 제도와 예산으로 보장해야 하는데, 바우처 방식은 그 책임을 개인의 선택과 지출로 떠넘긴다. 이동권을 예산 항목이 아니라 쿠폰처럼 취급하는 순간, 국가의 책임은 뒤로 빠지고 장애인만 다시 스스로 이동을 해결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무장애 관광특구 공약은 더 노골적이다. 장애인의 현실은 관광이 아니라 생존이다. 출근하고, 학교에 가고, 병원에 가고, 지역사회 안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이 먼저다. 그런데 이번 공약은 숙박·상업·관광 거점과 저상 셔틀, 인증 식당과 숙박시설 인센티브를 내세운다. 삶의 핵심 문제를 소비의 문제로 낮춘 것이다. 장애인에게 절실한 것은 “여행할 수 있는 도시” 이전에 “매일 살아낼 수 있는 도시”다. 관광특구는 있어도, 이동권 보장 법제와 일상 교통망 전환이 없다면 그 특구는 결국 그림 좋은 쇼윈도에 지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관광과 이동의 핵심 수단인 고속·시외버스 가운데 휠체어 이용자가 실제로 탑승할 수 있는 차량은 지금도 전무하다는 것이다.

 

원스톱 생활지원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보조기기 상담과 임대, 사후관리를 한곳에서 처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장애인의 인권이 요구하는 것은 행정 창구의 효율화가 아니다. 더 시급한 것은 활동지원의 실질적 확대, 발달장애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 안정적인 노동권 보장, 지역사회 안에서의 자립생활 조건 확보다. 보조기기 지원 체계를 손보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장애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공약인 것처럼 제시되는 순간, 본질은 흐려진다. 센터는 만들어도 권리는 여전히 비어 있게 된다.

지원주택 20호 확보 공약도 숫자는 있어 보이지만, 방향은 빈약하다. 장애인의 주거 문제는 단지 집 한 칸을 더 공급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시설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안에서 자기 삶을 자기 결정으로 꾸릴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래서 주거는 활동지원, 돌봄, 지역사회 서비스와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몇 호 확보와 인력 확충 수준의 발표로는 탈시설과 자립생활이라는 본질적 과제를 감당할 수 없다. 장애인을 여전히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남아 있는 한, 지원주택은 자립의 토대가 아니라 시설의 바깥 버전으로 축소될 위험이 크다. 장애 정도를 나누어 선별적으로 지원할 것이 아니라, 누구든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활동지원과 돌봄, 교통, 주거 서비스를 먼저 촘촘히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나마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 예산제는 방향 자체는 맞다. 정책과 예산 설계 단계에서부터 장애인의 관점을 반영하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법과 예산의 강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선언에 머문다. 심의하고 평가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권리가 생기지 않는다. 국회와 정부가 실제로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자립생활권을 법제화하고, 이를 집행할 권리예산을 안정적으로 편성하지 않으면 영향평가와 예산제는 보기 좋은 제도 문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절차는 늘어나는데 삶은 그대로인 정책, 그것이 장애인들이 가장 오래 겪어온 피로다. 특히 기존 장애등급제는 폐지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장애 정도 구분과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체계가 장애인의 권리 접근을 선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향은 공허한 선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번 공약의 결정적 한계는 빠진 것들에 있다. 노동권이 없다. 교육권이 없다. 활동지원 확대가 없다. 발달장애 국가책임 강화가 없다. 탈시설을 국가의 명시적 의무로 못 박는 정책도 없다. 결국 남은 것은 이동비 일부 지원, 관광 인프라, 생활지원 창구, 제한된 주거 대책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의 삶을 바꾸는 권리 공약이 아니라, 장애인의 불편을 관리하는 행정 공약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차별과 배제의 철폐 정치가 아니라 불편 완화의 정치다.

 

장애인의 날에 필요한 것은 따뜻한 수사가 아니다. 더구나 “촘촘한 안전망” 같은 표현은 문제를 더 흐린다. 장애인이 원하는 것은 보호의 울타리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다. 국가는 장애인을 돕는 주체가 아니라, 이미 보장됐어야 할 권리를 뒤늦게라도 이행해야 할 의무의 주체다. 그러니 이번 공약을 두고 냉정하게 말해야 한다. 이것은 장애인의 일상을 바꾸는 공약이 아니다. 차별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편의 몇 가지를 덧댄 공약일 뿐이다.

 

[더인디고 THEIND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