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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AI 상담이 먼저 받는 사회, 장애인은 누구에게 닿아야 하나
2026-04-15 11:49:03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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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상담이 먼저 받는 사회, 장애인은 누구에게 닿아야 하나

손말이음 너머 ‘장애관련 통합 상담전화’가 필요한 이유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  요즘 전화상담의 첫머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인 경우가 많다. 통신사는 24시간 AI 보이스봇과 ‘보는 ARS’를 운영하고 있고, 서울시는 2025년 7월 전국 최초로 AI 기반 119 신고접수 시스템 시범운영을 공식 발표했다. KT 역시 고객센터에서 음성상담, 채팅상담, AI 보이스봇, 보는 ARS를 함께 운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효율과 속도라는 명분 아래 전화상담은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 자동화가 누구에게나 같은 편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W3C는 자연어 인터페이스와 IVR, 챗봇 같은 시스템이 장애인에게 접근 가능하려면 복수의 입력·출력 방식을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이용자는 음성입력이 필요하지만, 다른 이용자는 키보드, 스위치, 시선추적, 문자입력이 필요하고, 어떤 이용자는 음성 대신 텍스트나 점자 출력이 필요하다. 또 W3C는 음성입력이 인지적으로 부담이 크며, 특히 학습·인지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단계 안내와 쉬운 표현, 충분한 응답시간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오늘의 보이는 ARS와 AI 상담은 분명한 위험을 안고 있다.

음성형 AI는 또렷한 발화와 청취를 사실상 전제하고, 화면형 ARS는 스마트폰 화면 확인과 터치 조작을 전제한다. W3C는 비정형적 발화를 가진 이용자에 대해 시스템이 그 말을 충분한 정확도로 인식해야 하며, 언제든 입력 방식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또한 챗봇은 세 번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 상담의 연락처를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AI가 먼저 받고, 사람 상담은 뒤로 밀리거나 평일 특정 시간대로 제한되기 쉽다.

KT도 AI 보이스봇은 365일 24시간 운영하지만 상담사 연결은 평일 9시부터 18시까지라고 안내한다. 자동화의 속도가 인간 상담 접근권보다 앞설 때, 장애인에게 이것은 혁신이 아니라 새로운 차별의 문턱이 된다.

물론 한국에 아무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손말이음센터는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해 수어영상중계, 문자중계, 발화청취중계 등을 365일 24시간 제공하고 있고, 2025년 4월부터는 청각·언어장애인이 119에 영상통화로 직접 전화한 뒤 손말이음센터 중계사가 3자 연결로 통역하는 체계도 운영되고 있다.

보건복지상담센터 129는 조직상 장애인 관련 전화상담과 긴급지원 관련 상담 및 기관 연계를 담당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는 분절이다. 의사소통 중계는 107, 복지상담은 129, 행정민원은 110, 긴급신고는 119로 나뉘어 있다.

장애인이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번호 백과사전이 아니라, 하나의 창구에서 상담·권리안내·긴급개입·사례연계가 이어지는 통합 경로다.

이 점에서 청소년상담1388과 여성긴급전화1366은 대조적이다. 청소년상담1388은 전화와 온라인, 문자, 채팅 등을 통해 365일 24시간 상담을 제공하는 비대면 상담서비스로 운영되고 있고, 여성긴급전화1366은 폭력 피해 여성을 위해 전국 통일번호로 365일 24시간 위기개입 상담, 긴급피난처, 지역기관 연계를 수행한다. 즉 청소년과 여성에 대해서는 “누가, 어떤 위기에서, 어디로 전화해야 하는가”가 제도적으로 분명하다.

반면 장애인은 여전히 장애유형, 상황유형, 기관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번호를 돌아다녀야 한다.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행정 비효율이 아니다. 2024년 말 기준 등록장애인은 263만 1,356명으로 전체 인구의 5.1%이고, 65세 이상 비율은 55.3%였다. 이미 장애와 고령, 질병, 돌봄의존이 겹치는 시민이 대규모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3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정보통신망과 정보통신기기의 접근·이용을 위한 도구와 서비스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역시 접근성을 정보통신기술과 응급서비스까지 포함하는 국가 의무로 규정하고, 위험상황에서의 안전보호, 폭력·학대로부터의 보호, 그리고 수어·점자·AAC를 포함한 의사소통 방식의 수용을 요구한다. 장애관련 통합 상담전화는 복지서비스의 추가 옵션이 아니라 접근권과 안전권을 실질화하는 국가책임이다.

해외는 이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호주의 Disability Gateway는 장애인과 가족, 돌봄제공자를 위한 별도 전화창구를 운영하며, 첫 화면과 한국어 안내 페이지에서 통역서비스와 National Relay Service 연결을 함께 제공한다. 또 같은 호주에는 장애인 학대와 방임을 신고하는 National Disability Abuse and Neglect Hotline이 별도로 있어, 전화·이메일·NRS를 통해 신고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advocacy service 연계도 지원한다. 장애인의 문제를 단순 문의와 신고로 쪼개지 않고, “장애를 이해하는 별도 진입로”를 마련한 셈이다.

영국도 유사하다. GOV.UK의 Disability Service Centre는 장애급여 상담에 대해 일반전화, Relay UK, BSL 영상중계를 함께 제공한다. 응급상황에서는 999 BSL 서비스가 있어 BSL 이용자가 앱이나 웹을 통해 통역사와 연결된 뒤 999 운영자에게 연락할 수 있다.

캐나다도 Canada Disability Benefit 문의에 일반전화와 별도로 TTY 번호와 Canada VRS를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988 위기상담망에 ASL direct video calling service가 도입돼, 화상전화 이용자와 ASL 사용자가 직접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장애인의 전화 접근을 ‘기존 번호에 끼워 맞추는 문제’가 아니라, 별도의 접근 설계를 요하는 공공인프라 문제로 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손말이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손말이음을 포함해 129·110·112·119·지자체 사례관리·권익옹호기관을 묶는 장애관련 통합 상담전화다. 이 전화는 최소한 다섯 가지를 갖춰야 한다.

첫째, 전국 단일번호여야 한다.

둘째, 음성·문자·영상수어·AAC·쉬운 정보·실시간 문자 등 다양한 접근방식을 한 번호 안에서 지원해야 한다.

셋째, 청소년장애인과 여성장애인처럼 교차적 취약성을 고려한 전문 경로가 있어야 한다.

넷째, 학대·폭력·돌봄공백·주거위기·복지급여 중단·정신건강·응급상황을 분류하고 즉시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AI가 먼저 받더라도 언제든 사람 상담으로 즉시 전환되는 구조를 기본값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자동화 시대의 복지국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복지는 가장 다급한 순간에 국가가 어떤 목소리로 응답하는가의 문제다. 지금처럼 장애인이 번호를 고르고, 방식을 고르고, 기관을 고르고, 같은 설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구조는 상담체계가 아니라 선별체계에 가깝다. 청소년에게 1388이 있고 여성에게 1366이 있다면, 장애인에게도 이제는 하나의 쉬운 번호, 하나의 접근 가능한 창구, 하나의 통합된 응답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전화는 연결의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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