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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에서 대한민국까지 ‘닮은꼴’인 장애의 비주류화

'접근성 부정은 차별이다'는 내용의 캠페인 문구. ⓒTCI-global
올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성안 20주년을 맞이해 의미 있는 만남이 국회에서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 등의 제22대 국회 장애여성 의원단과 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김미연 위원장을 접견하며,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점검 및 국제협력 모색은 물론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선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김미연 위원장은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국내 법·제도 정비를 주문했고, 김예지 의원은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선도국가가 대한민국이 될 것 등을 강조했다. 이 소식을 들으며 올해는 분명 장애인권리협약이 분명 일상에 반영되기 위한 실마리와 전환점을 마련하는 해겠지 하는 기대가 생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스북에서 충격적인 장애인권리위원회 성명서를 접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올해 1월 22일 유엔 총회 및 회의 관리국에서 재정난 때문에 자금 지원을 승인할 수 없어, 국제 수어 통역 및 자막 제공 등의 필수 접근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고, 이에 따라 당사국 심의를 포함한 3월의 제34차 정기 세션 개최가 불가능해졌다고 발표했단다. 이와 관련해 작년 1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일본의 한 농인 의원은 수어 통역사 최소 2명 배치를 사무총장 산하 부처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거절당해, 제3자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란다.
더군다나 2025년 1월엔 유엔 제네바 사무소 회의 관리국이 국가별 수어통역 서비스 중단을 밝혔다고 성명서는 이야기한다. 이 얘기를 접하며, 솔직히 어이없었다. 2024년까지만 해도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각 당사국별 국가보고서 심의를 하면, 수어 통역사들은 늘 등장했고, 이들의 손을 통해 전 세계 농인들은 국가의 답변과 그 속에 담긴 거짓말 등 장애인 권리 현황을 접했다.
그런데 이게 중단된다면, 전 세계 농인들이 각 국가별로 장애인 권리 현황을 접할 기회가 일단 박탈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또한, 장애인권리협약 9조와 34조를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차별적인지를 알 수 있다. 먼저 접근성 명시한 9조의 1항에선 당사국은 장애인이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정보와 의사소통, 대중에게 개방된 시설과 서비스 등에 접근하는 걸 접근성의 목적으로 얘기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란 말에서 평등과 비차별, 그리고 의미 있는 참여와 자립을 도모하는 것이 접근성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다. 그리고 접근성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까지 명시한다. 이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닌 Shall 성격의 법적 의무인 거다. 농인에게 수어 통역사는 일종의 접근성 조치라 이건 당연한 의무인 거다.
그런데 재정 상황에 따라 수어통역 서비스 중단한다고 하는 건 접근성을 법적 의무이자 권리가 아닌 복지 관점의 시혜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를 들어 농인 의원이 당사국 심의 시 당사국의 대표단에게 정보를 얻은 후 당사국 권리 현황에 대해 제대로 판단·결정하며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게 되니 자립과 거리가 멀며, 그의 의미 있는 참여를 가로막게 되니, 명백한 차별인 것이다.

게다가 제34조 11항엔 국제연합 사무총장이 이 협약에 의하여 설립된 위원회의 효과적 기능 수행을 위해 필요한 직원과 시설을 제공하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농인 위원에게 수어통역사 미제공은 위원회 내에서 그의 효과적 기능 수행을 막기에, 제34조 11항도 미이행하는 처사다.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는 접근성과 합리적 편의를 제공하라는 권고를 각 당사국에 한다. 그러나 이번 재정 부족으로 인한 국제 수어 통역 및 자막 미제공을 장애인권리위원회에게 유엔이 통보했다니, 위원회로선 침묵할수록 위원회의 존재 이유와 독립성을 위협받는 게 아니고 무엇이던가? 더불어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성명서를 통해 제34차 세션이 정상 개최되도록 접근성 조치 등의 긴급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력하고 분명하게 요구하는 거다. 국제장애연맹(IDA)과 전 세계적인 심리사회적 장애인 옹호단체 TCI-global, 한국장애포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도 유엔의 조치를 비판하는 기사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번 사태는 각 당사국의 분담금으로 재정이 운영되는 유엔의 재정구조와 연관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러시아를 유엔 차원에서 제재하는 것에, 러시아는 유엔이 껄끄럽다. 또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지원하는 미국으로선 유엔의 제재가 자신의 국익에 반하는 거고, 보수나 극우 정권 들어설 때마다 오래전부터 우리 세금을 왜 유엔에 퍼부어야 되냐며, 유엔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러시아는 분담금 납부를 꺼리고 이들이 분담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적지 않기에 오늘과 같은 사단이 난 거다. 결국, 강대국의 입김 속에 전 세계 장애인 권리 모니터링 메커니즘이 유린당할 위기에 놓인 거다. 만약 이걸 유엔이 방치한다면 그토록 인클루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강조했던 유엔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위선을 저지르는 거다.
예산에 따라 장애 인권이 침해당해도 되는 성격의 것이라고 유엔이 판단한다면? 이건 장애 인권은 국제사회의 주류 의제가 아닌 단지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장애 인권과 장애인 정책의 주류화가 아직도 되지 않았다는 반증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국에선 2010년대 경제위기 때 긴축재정 정책을 시행했는데, 장애인 자립을 돕는 독립생활 수당을 개인 독립 지불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이 이동권 및 활동지원 등을 박탈당했다. 이에 2016년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영국 정부가 “장애인의 권리를 심각하고 체계적으로 위반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비나 기업 지원금은 유지한 채로 말이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이는 장애 인권과 장애인 정책이 국가와 국제사회의 핵심 우선순위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폐기 가능한 비주류 의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씁쓸하기까지 하다.

올해 1월 21일에 있었던 이재명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전경. ⓒMBC News Youtube 동영상 캡처
우리나라도 다르진 않다. 얼마 전 1월 21일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들과 함께 신년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국정 운영 기조와 핵심 정책, 미래 비전을 국민과 언론에 직접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소통의 장이 신년기자회견이다. 그 기자회견 자리에서 주로 ▲지방정부와 돈과 권한을 몰아주기, ▲환율 안정, ▲퇴직연금 기금화, ▲정교분리 엄수, ▲민중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의 검찰개혁 등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그러나 장애인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실질적인 평등의 실마리가 되는 차별금지법이나, 장애계에서 논의 중인 탈시설에 대한 질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법원에서 행복추구권의 일환이자 기본권으로 판결한 장애인 접근권, 장애인고용에 대한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언급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다. 국민주권정부의 제1 국정운영 원칙이 오로지 국민의 삶이라고 이 대통령 자신이 기자회견 속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서비스를 받을만한 자격을 운운하며, 이에 대한 입증책임을 사실상 장애인이 오롯이 지는 이 구조를 개선하려는 차원의 질문이나 관련된 대통령의 생각이 신년기자회견에서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조차 없었으니 이 또한 정부에서 장애인 이슈를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바라보고 있단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국민의 삶에 장애인의 삶은 없으니 그 삶을 과거처럼 또 다시 증명해야 하나? 장애인을 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자 국민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좋지 못한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부분이다.
UN과 전 세계, 대한민국에서 보듯 장애인차별을 통한 장애의 비주류화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닮은꼴'인 현상이자 진실이다. 그러기에 UN은 이번 장애인권리위원회를 차별하는 조치를 철회하고, 장애인권리위원회 성명서에서 나온 것처럼 긴급 재원 마련으로 수어통역 등 접근성 서비스를 복원하고, 농인 위원에게 최소 2명 이상의 수어 통역사 배치와 원격 수어통역 수수료 폐지 등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2월 3일 오전 국회접견실에서 한국인 최초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장으로 선출된 김미연 위원장과 제22대 국회 장애여성 의원단을 접견한 모습. ⓒ국회
우리나라 경우도, 입법부에서의 만남이 장식용이 되지 않도록, 입법부는 이 만남을 정부에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촉구하기 위한 시작점이자 실마리로 삼아야 한다. 장애인의 기본권과 자유 보장을 통한 인간다운 삶을 요구할 구체적인 법적 장치와 관련 예산 근거 마련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도 구체적인 법적 장치는 물론 실질적인 예산의 뒷받침으로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럴 때 올해 20주년을 맞이하는 장애인권리협약은 실질적으로 장애인의 일상에 구현되는 살아 숨 쉬는 인권 조약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필자는 이번 유엔이 벌인 장애인권리위원회 차별에 항의하는 위원회 차원의 성명서에 함께 연대하는 마음을 보낸다. 전 세계 장애인의 기본권과 자유가 현실이 되는 세상을 위해.
출처 = 에이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