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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박관찬의 기자노트] 헬렌 켈러 이야기
2024-08-28 08:34:01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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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찬의 기자노트] 헬렌 켈러 이야기

 

앤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강의 내용을 전달한 방법 중 하나는 손바닥 필담이다. ©오상민 작가

▲앤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강의 내용을 전달한 방법 중 하나는 손바닥 필담이다. ©오상민 작가

 

강연을 진행하면서 한 번씩 헬렌 켈러 이야기를 한다. 미국에서는 Deaf-Blind라는 이름으로 인지되고 있는 시청각장애를 교육생들에게 알리기 위함도 있지만, 교육생들의 장애 감수성을 살펴보고 얼마나 장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목적도 있다.

 

헬렌 켈러가 미국 래드클리프 대학에서 강의를 어떤 방법으로 들었는지 이야기할 때, 두 가지 방식 중 한 가지는 기자가 설명하고 나머지 한 가지는 교육생이 맞춰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앤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강의 내용을 전달한 방식 중 하나는 손바닥 필담이다. 헬렌 켈러의 손에 차가운 물이 닿았을 때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의 손에 ‘water(물)’라고 적었던 바로 그 방법이다.

 

그런데 대학 강의는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기 때문에 강의 내용을 손바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전달하기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영어는 한글처럼 읽는 순서대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문장의 구조나 문법에 따라서 끝까지 읽어야 무슨 뜻인지 해석할 수 있다.

 

손바닥 필담 외에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강의 내용을 전달한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이건 교육생들에게 생각해 보고 맞춰 봐 달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육생들에게서 원하는 답을 받은 적이 없다.

 

점자, 설리번 선생님의 입모양을 손으로 만져서 이해하는 촉구어가 가장 많은 대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둘 다 아니다.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강의 내용을 전달한 방법 두 가지는 손바닥 필담과 촉수어다.

 

촉수어는 청각장애인이 구사하는 의사소통 방법인 수어를 시각장애도 가진 시청각장애인이 조금이라도 원활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상대의 손을 접촉해서 촉각으로 수어를 느끼면서 하는 의사소통 방법이다. 불특정 다수의 청각장애인들이 한 명이 구사하는 수어를 볼 수 있지만, 시청각장애인이 하는 촉수어는 반드시 일대일로 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쉬운 생각이 든다. 교육생들은 분명히 헬렌 켈러는 잘 알지만 시청각장애는 모른다. 또 촉수어도 모른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시청각장애를 15가지의 장애유형으로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청각장애인들이 수어를 의사소통 방법으로 사용한다는 건 많은 국민들이 인지하지만, 시청각장애에 대해서는 아직 그만큼의 영향을 주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헬렌 켈러 하면 교육생들이 생각하는 게 있다. “3일만 볼 수 있다면”이다. 제목 그대로 보지 못하는 헬렌 켈러가 ‘만약’ 3일만 볼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은지를 담은 내용이다. 워낙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헬렌 켈러하면 꼭 기억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장애 감수성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이런 내용의 접근이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온다. 기자도 타 언론사로부터 인터뷰를 받을 때, 마지막 질문은 항상 이와 비슷한 것이었다. 3일만 보고 들을 수 있다면 뭘 보고 뭘 듣고 싶은지가 그것이다. 과연 이 질문이 괜찮은 질문인 걸까.

 

이미 장애인이 되었고,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시청각장애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굳이 비장애인이 되는 것을 상상해 봐야 하는가? 그것도 완전히 비장애인이 되는 게 아닌, 단 3일 동안의 가정은 부질없다.

 

물론 헬렌 켈러가 어떤 의도로 그 내용을 썼는지, 그리고 당시 장애에 대한 관점이 어떠했는지를 감안한다면 그 내용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 내용을 현대 시점에도 그대로 가져와서 똑같이 적용하려는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겐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그랬다고 지금도 그래야 되는 게 아니라, 과거에 그랬더라도 지금의 정서에 맞게 적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출처: https://theindigo.co.kr/archives/58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