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료실 > 이슈와 칼럼

이슈와 칼럼

이슈와 칼럼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일상기록으로 노후준비 시작하기
2026-05-14 16:19:57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27
106.246.188.157

선물합니다. 작별할 권리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일상기록으로 노후준비 시작하기

당사자의 삶의 모양을 바탕으로 조금씩 천천히 노후준비 시작해보기

 

【에이블뉴스 김영아 칼럼니스트】발달장애인의 노후와 부모사별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가슴이 먹먹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부모님이 갑자기 편찮으시면 어떻게 하지.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누가 돌보지. 혼자 살 수 있을까. 시설에 가야 하나. 돈은 얼마나 준비해야 하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이는 모두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발달장애인의 노후는 늘 불안하고 어두운 미래처럼만 느껴진다. 부모에게는 죄책감이 되고, 당사자에게는 설명되지 않는 불안이 되고, 현장에는 답 없는 숙제처럼 남는다. 누구에게나 노후는 불안한 과제이지만, 발달장애인에게 불안감이 더 큰 이유는 그들의 어려움과 위기에 시선이 더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노후를 바라보려면 위기와 공백의 이야기가 아니라, 준비와 가능성의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발달장애인의 노후가 꼭 막막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행복해하고,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신호에서 노후의 대안을 찾아본다면 어떨까? 그 이야기를 가상의 인물인 55세 발달장애인 민수 씨를 통해 그려보자. 

민수씨는 평생을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평일에는 보호작업장에 다녔고, 주말에는 종교활동을 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볶음밥이고, 병원에 갈 때는 낯선 의사의 빠른 설명을 어려워했다. 몸이 불편해도 아파요라고 정확히 말하기보다는, 말수가 줄고 방에 오래 들어가 있는 편이었다.

민수 씨의 부모님은 민수 씨를 잘 알았다. 어떤 사람을 불편해하는지, 어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는지, 돈을 쓸 때 어느 정도의 도움이 필요한지, 처음 가는 장소에서는 어떤 설명이 필요한지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모든 정보가 부모님의 머릿속에만 있었다는 점이다. 민수 씨의 삶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부모였지만, 부모가 아프거나 갑자기 곁에 없게 되면 그 정보도 함께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민수 씨 가족은 40대 후반부터 조금씩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서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재산계획, 후견제도, 주거계획 같은 큰 주제부터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기록먼저 시작했다.

그 기록은 “민수씨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와 같은 보호와 안전 중심의 내용이 아니었다. 민수 씨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가장 편안해하는지, 누구와 있을 때 표정이 밝아지는지를 적는 기록이었다.


 

부모님들과 '자녀의 노후,미래계획수립'을 위해 좋은하루, 관계망을 기록하는 장면. ©김영아

부모님들과 '자녀의 노후,미래계획수립'을 위해 좋은하루, 관계망을 기록하는 장면. ©김영아

 

“민수 씨는 아침에 소고기미역국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파트 경비아저씨와 인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작업장 동료 000와 함께 있으면 말수가 늘어난다.”  “복잡한 설명보다 사진을 보여주며 천천히 말해주면 훨씬 잘 이해한다.”   “시장처럼 사람이 많은 곳은 힘들어하지만, 조용한 공원 산책은 좋아한다.”  “공개적으로 칭찬받는 것보다 조용히 ‘잘했어요’라고 말해줄 때 더 좋아한다.”

이처럼 민수 씨의 부족한 점을 기록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민수 씨가 어떤 관계 안에서 힘을 얻는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서 행복해지는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설명받을 때 자기 선택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노후준비라고 하면 우리는 자주 위험을 먼저 떠올린다. 아플 때 어떻게 할지, 돈을 어떻게 관리할지, 위기상황 시 누구에게 연락할지를 생각한다. 물론 그런 정보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할수도 계획할 수도 없다. 민수 씨에게 필요한 노후준비는 위험을 막고 안전을 보장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익숙한 길을 걷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자신이 편안해하는 방식으로 설명을 들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민수 씨의 기록에는 어려움 보다 관계망,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행복해하는 순간이 먼저 기록되었다. 이 사소한 기록들이 쌓이면서, 민수 씨의 노후준비는 나다운 삶을 이어가기 위한 계획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기록이 노후준비라고 부를 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기록들은 민수 씨의 삶을 지키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만 아는 사람은 민수 씨를 관리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와 있을 때 행복한지, 어떤 상황에서 웃는지를 아는 사람은 민수 씨의 삶을 함께 이어갈 수 있다. 민수 씨의 노후준비는 바로 이 지점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그가 원하는 노후의 모습을 묻는 방식 또한, 그가 좋아하고 편안해하는 방식으로 취할 수 있었다.  “나중에 어디에서 살고 싶어요?”가 아닌, “지금 집이 좋아요, 다른 집도 궁금해요?” 라는 질문으로,  “누가 도와주면 좋아요?” 보다, 사진을 보며 “이 사람과 병원 가는 것 좋아요?”라는 방식으로,   "미래계획 을 세웁시다” 보다, “민수 씨가 계속 하고 싶은 일은 뭐예요?”라는 질문을 택했다. 

민수 씨는 완성된 문장으로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선택은 할 수 있었다. 좋고 싫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 반복해서 묻고, 그림과 사진으로 설명하고, 충분히 기다리자 민수 씨의 대답이 조금씩 모였다. 그렇게 민수 씨의 삶은 부모만 아는 삶에서, 주변 사람들이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삶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네 병원 간호사는 민수 씨가 진료실에서 긴장하면 설명을 짧게 나누어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복지관 사회복지사는 민수 씨가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때 사진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민옹호인은 민수 씨가 사람 많은 시장길은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민수 씨의 노후준비 핵심이었다. 부모를 대신할 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닌 민수 씨를 조금씩 알고 있는 여러 사람을 만드는 것. 한 사람의 헌신이 아닌, 여러 관계가 느슨하지만 꾸준히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  우리는 발달장애인의 부모사후를 이야기할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고민과 질문을 하곤 한다. 이제는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누가 이 사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가.  누가 이 사람의 표현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  누가 이 사람의 일상이 갑자기 무너지지 않도록 연결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이 더 현실적인 노후준비일 지도 모른다. 물론, 민수 씨의 부모님도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걱정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모든 걱정을 부모 혼자 끌어안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민수 씨의 삶이 조금씩 기록되었고, 몇몇 사람이 그 기록을 함께 알고 있었고, 민수 씨도 자신의 방식으로 준비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좋은 노후준비란 완벽한 미래를 보장하는 일이 아니다. 비장애인도, 발달장애인도 완벽한 노후준비는 불가능하다. 다만, 준비된 삶과 준비되지 않는 삶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민수 씨 사례는 특별한 성공사례가 아니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완벽한 제도가 뒷받침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준비에 가깝다. 우리는 그동안 발달장애인의 노후를 너무  뒤늦게 다루어왔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사후대응으로 접하다보니 더 무겁고 다급하고 중대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발달장애인의 노후와 부모사별이 불안이 되지 않으려면 젊고, 건강하고,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 일상 안에서 조금씩 천천히 준비되어야 한다. 보호받는 노후가 아니라, 이해받는 노후. 맡겨지는 노후가 아니라, 이어지는 노후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