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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한겨례21]관리 가능 에이즈, 관리하는 곳이 없다
2015-07-03 09:53:32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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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가능 에이즈, 관리하는 곳이 없다

요양병원 입원·진료 거부당하는 에이즈 환자들, 그들에 대한 정부·병원의 무책임은 메르스 때와 꼭 닮아… 국공립 요양병원 세우고 핫라인 설치해, 30년 상처와 차별에 대한 치유에 힘써야

등록 : 2015-07-02 12:40

 
6월은 잔인한 달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거점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은 입원했던 병원에서 연고도 없는 지방병원 등으로 옮겨야 했고, 에이즈종합대책을 올해 상반기까지 마련하겠다고 했던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6월이 다 가도록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았다. HIV/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을 둘러싼 상황이 변하면서 새 대책이 절실하다. HIV 감염인은 해마다 900~1천 명 수준으로 늘어나 2013년까지 내국인 생존 감염인이 8662명에 이르렀다. 감염인의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돼 2013년 현재 60살 이상 감염인이 974명으로 전체의 11.3%가 됐다. 에이즈가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됐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2013년 유일한 HIV/AIDS 감염인 요양병원이었던 한 요양병원에서 성추행 등 인권침해 문제가 불거졌다. 이후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전원된 환자들 상당수는 긴급한 치료를 요하는 급성기 환자가 아니라 요양치료가 적절한 만성기 환자였다. 정부의 묵묵부답에 HIV 감염인 진료·요양 체계 구축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눴다.

 

옮겨간 지방 국립대 병원에서 생긴 일

최용준 한림대학교 사회의학교실 교수가 사회를 맡고 한국 HIV/AIDS 감염인 연합회 KNP+ 김미카엘 대표, 에이즈 정책연구자인 이훈재 인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 ‘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김대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 김지영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지역지회 활동가가 토론했다.

사회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했던 HIV/AIDS 환자들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고생했다고 들었다.

김미카엘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뒤, 지방 국립대 병원으로 옮기게 된 환자의 보호자 자격으로 (그 병원에) 따라갔다. 그 병원 간호사가 너무 당황하더라. HIV 감염인을 처음 봤던 것 같다. 병원 윗선에 감염인 환자가 온다는 얘기가 전해졌겠지만, 일선 간호사는 모르고 있었다. 그 간호사가 ‘보호자 없이는 절대 못 받는다’고 해서 ‘제가 보호자 자격으로 왔으니 사인해드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절대 간병인이 없으면 갈 수가 없다’고 하더라. 그분이 벌벌 떨면서 처음엔 링거주사를 못 놓더라. 그 환자에게 내가 너무 미안했다. 내일이면 간병인이 오는데도, 하루도 안 된다며 간병인을 구해두고 가라고 해서 부랴부랴 구하느라 진땀을 뺐다. 지방병원에서 감염인 환자를 받았을 때의 반응은 나 스스로도 너무 놀라웠다. 의료인도 이런데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버스 타고 오면서 암담했다.


김지영 우리 단체는 감염인 쉼터를 운영하는데, 이런 분이 오면 재난 수준이다. 환자들이 입원할 병원을 찾기 위해서 한 기관이 모든 업무를 중단하는 지경이다. 메르스 때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전화가 왔다. 오죽하면 국립중앙의료원 에이즈 상담간호사가 지방의 쉼터까지 연락했겠는가. 역시나 도무지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연락을 했다고 들었다. 쉼터는 병원에 입원할 환자를 지원할 여건이 전혀 안 된다. 그 상담간호사도 그걸 모를 리 없는데. 오죽 답답하면 우리한테 전화가 왔을까. 이런 상황이 10년 넘게 반복되고 있다.

수술을 하는 종합병원의 진료 거부 사례는 흔하다. 수술을 거부한 병원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을 통해 개선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요양병원의 진료 거부는 더욱 뿌리가 깊다. 감염인을 돌볼 의료 환경이 안 된다거나 다른 환자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를 대면서 거부하는 사례가 100%에 가깝다. 배경엔 요양병원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요양병원 99% 민간 운영, 질본의 요구는 공허

사회 요양병원에 공공성이 부족한 것과 입원 거부가 관련 있나.

김대희 공무원도 이제는 경험을 해서 안다. 아무리 공문을 돌려서 감염인을 입원시켜달라고 해도 강제성이 없는 한 병원은 입원시키지 않는다. 요양병원 99%를 민간에서 운영하는 현실에서 질병관리본부의 요구는 공허하다. 정부가 해결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다. 급성기 감염인 환자 상담사업을 하는 의료기관 19개 병원 중 3분의 2 이상이 국립병원 혹은 시립병원이다. 그나마 급성기 병원은 국공립 병원이라는 수단이 있어서 정책을 내리면 듣는 척이라도 한다. 1300여 개 요양병원 중 국공립에서 직영하는 병원은 5~6곳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정책을 수립해도 수행할 손발이 없다.

사회 그래서 내놓은 정부의 대책은 전무한가. 단기적인 대책도 없었나.

김대희 정부는 감염인이 요양병원에 입원할 경우 의료수가를 올려서 민간 요양병원을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수가를 올렸는데도 반응이 없다. 대책위가 처음 예측했듯이, 강제력 없이 민간 요양병원이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게 확인됐다. 요양병원협회는 가장 높은 수가의 2배를 줘도 적절하지 않다고 할 정도다.

이훈재 의료기관에 에이즈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입원하고 나서도 문제가 있다. 식당에서는 주인이 달가워하지 않아도 음식을 주면 먹으면 된다. 택시도 타고 가면 그만이다. 의료서비스는 병원에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의료인이 전문적 양심에 따라 치료하는 것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읍소하면서 가봐야 기대하는 것을 의료기관에서 채우기 힘들다. 한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의과대학 6년 과정에서 에이즈를 고작 2시간 정도 배운다. 의사도 사실상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간호사도 일반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니 감염인 환자가 병원에 오는 일을, 메르스 환자가 음압병실이 없는 병원에 밀고 들어오는 것처럼 생각한다.

사회 의료수가를 올리는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힘들어 보인다.

이훈재 병원이 수익을 생각해서 못 받는다고 하면 유인책이 효과가 있지만, 지금 상황은 ‘에이즈 환자로 돈을 안 벌어도 좋으니 우리를 사지로 몰지 말라’ 이런 식이다. 장기적으로 모든 병원에 에이즈 환자가 차별받지 않고 갈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이렇게 문제가 심각하니 한두 개 요양병원을 국공립으로 세워서 그 병원이 선도적 역할을 해서 ‘에이즈 환자가 위협이 되지 않는구나’ 하는 학습효과를 만들어야 한다. 요양서비스 필요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한두 개 병원이 감당할 수준이니 지금 해야 한다.

 

알코올중독 심각해도 에이즈만 중요시

사회 단기적으로 HIV/AIDS 감염인을 위한 국공립 요양병원 건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였다. 요양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김대희 전국적으로 250명 정도로 추산한다. 그중에 실제 오는 사람은 100명이 최대치라고 본다.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2013년 12월 기준으로 요양병원 및 요양시설 입원을 필요로 하는 감염인 환자가 203명이다. 이 중 요양병원 입원이 필요한 환자는 70명이다.) 권역별로 국공립 요양병원이 있으면 가족과 격리되지 않고 치료받기 더욱 좋다.

김미카엘 이전에 지정된 요양병원에 많으면 70명 정도가 있었으니까 100명 정도로 보는 편이 맞겠다.

이훈재 실제 알려지면 잠재적 수요가 더 생길 수도 있다. 감염인 1만 명 중 1천 명이 60살을 넘겼고, 남성이 많고 독거하는 분이 많아서다. 묻혀 있는 수효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김지영 고령화 문제도 있지만, 젊은 감염인의 알코올중독이나 우울증 등 정신 질환 문제도 심각하다. 가까이서 보면 알코올중독 문제가 이분들 삶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심각한데, 정작 병원에서는 알코올중독보다 에이즈를 더욱 심각하게 본다. 그래서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정신병원 입원을 받아주지 않는다. 혹여나 입원이 되었다 하더라도 에이즈 감염 사실이 다른 환자나 보호자에게 알려지는 날에는 강제퇴원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쩌다가 입원을 시켜주는 의료인이 있어도 낙인 효과 때문에 어렵다는 얘기다. 어렵사리 입원한다 하더라도 감염인의 삶의 질이 충분히 보장되는 여건에서 치료받을 형편이 못 된다. 입원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선행을 베푼 병원이라며 감사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 안타깝다. 이훈재 교수도 앞서 말했듯이 감염인들이 에이즈 환자란 이유로 고립되거나 차별받지 않게 함께 의지하면서 치료받을 지정된 요양병원이 당분간은 필요하다.

대구 감염인 쉼터에서 일하는 김지영씨는 HIV 감염인의 아들이 울면서 전화한 일을 전했다. 지방 국립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옮긴 재활요양병원에서 환자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해서 하루 종일 병원에 “짐짝처럼” 내팽개쳐진 감염인을 보고 아들이 울분을 토하며 전화한 것이다. 그는 “겨우 입원을 받아주는 병원도 ‘의료진과 환자들이 싫어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며 “감염인이 겪을 모욕감을 알면서도 되레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 참담하다”고 전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못하는 감염인 가운데 고시원 등을 전전하는 이도 적잖다.

 

병원 찾을 모든 책임은 환자에게 돌리고

사회 진료 거부 상황에 부딪히면 환자나 가족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나.

김대희 대부분 황당하니까 일단 관할 보건소에 전화한다. 거기서 도움을 못 받으면 정부기관을 찾다가, 또 안 되면 시민단체를 찾는다. 병원을 찾을 모든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

사회 HIV/AIDS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감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당장 해결이 안 되더라도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야 할 텐데.

김지영 그래서 진료 거부 등을 상담할 핫라인을 개설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지역사회에서 전화를 받아보면 쳇바퀴를 돈다. 감염인에게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지방자치단체에 전화하고 지방자치단체는 구청에 전화하고, 구청은 우리한테 전화하고. 사회적 낙인 때문에 전화조차 하기 힘든 감염인들을 위한 핫라인이 절실한 이유다.

이훈재 정부는 에이즈 예방법을 만들어 감염인을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보호한 흔적은 없다. 진료 거부로 환자를 차별했다는 얘기는 심심찮게 들리는데 차별한 병원이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경우는 없다. 특수장갑이 없다고 인공관절 수술을 거부한 병원이 있었다. 당사자가 용기를 내서 국가인권위에 진정하고 차별 시정 권고가 나왔다. 하지만 그 사건이 민원에 의해 관할 경찰서에 고발됐지만, 해당 보건소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서 무혐의로 끝났다. 한 이비인후과 의사는 의료상 필요하지 않은데도 가십거리로 감염 사실을 누설하고 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이것도 법원에서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례를 남겼다. 의료인의 감염인 진료 회피가 법적 책임을 지는 잘못된 행위라는 근거를 남길 기회를 국가기관 스스로가 잃었다. 의료인들이 안이한 인식을 가지도록 했다. 만약 감염인에 대한 의료 거부가 잘못이라는 판례가 있었다면, 의학 교재에 실려서 좋은 교육 기회가 됐을 것이다.

김미카엘 대책위를 만들고 요양병원 설립을 요구했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국가에 대한 기대감을 상실할 지경이다.

김지영 장애인 탈시설화가 중요한 화두지만, 감염인은 ‘시설에서라도 제발 받아줘’라고 읍소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대해 얘기하면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은 지역사회 복귀 지원이다. 앞서 감염인이 함께할 지정 요양병원 한두 곳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예전에 한센인 사례처럼 외딴 곳에 고립되는 방식은 절대 안 된다. 외곽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통합지원센터나 장기요양원, 그룹홈이 있어서 사회 복귀를 도와야 한다.

 

현장 조사 유엔 전문가들, 사무총장에 보고하기로

김대희 메르스 사태로 의료공공성 강화 요구가 커졌다. 공공병원은 아무리 차별이 있어도 민간병원보다 나을 수밖에 없다. 에이즈 환자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요양병원이 돼야 한다. 결핵 환자, 노숙인 등과 함께 차별받는 소수로 공공성 강화를 요구해야 한다. 메르스 사태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감염인뿐 아니라 결핵환자 등도 있었다.

HIV 감염인 당사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감염인 인권단체인 KNP+의 김미카엘 대표는 “이제는 약만 먹으면 충분히 다른 일을 한다”며 “아픈 분들은 당연히 요양병원에 가셔야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자기 요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이즈 민간단체의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훈재 교수는 “긴박한 요양병원 이슈 등에 민간단체가 비겁할 만큼 침묵했다”며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마침 HIV 감염인들을 치료하며 존경받아온 감염내과 의사인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와 엄중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교수가 메르스 사태의 전면에 나서며 영향력을 확보했다.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은 지금이 국공립 요양병원의 필요성을 생각할 적기인 것이다.

사회 지금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마무리 발언을 해달라.

김지영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의료공공성 확보 차원에서라도 권역별 거점 요양병원이 지정돼야 한다. 정부는 적어도 이곳에서는 입원 거부나 차별 행위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낙인을 최소화할 방안, 지역사회로 돌아오게 돕는 지원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오랜 시간 에이즈에 대해 침묵하고, 감염인을 낙인찍어왔다. 이것은 국가 차원의 인권 실종이다. 에이즈 30년, 이제는 우리가 상처 주었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치유에 힘을 쏟아야 할 시점이다.

김대희 우리 대책위의 모습이 에이즈 문제의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의료운동을 하는 사람,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 감염인 당사자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모여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요양병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사회 구성원이 조화롭게 정치에 참여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훈재 에이즈 환자의 요양서비스 관련 문제는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진 사건이 됐다. 지난해 10월 유엔에이즈 전문가들이 한국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했고, 한국에서 에이즈 환자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기회가 되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고하겠다고 했다. 유엔에이즈의 질의에 대한 정부의 허위 답변이 알려져 여론의 질타도 받았다. 이처럼 보건의료와 관련해 ‘비정상의 정상화’가 되어야 할 대표적 분야가 에이즈다.

 

“누구보다 상황 잘 아는 의사들이 나서야”

김미카엘 요양병원에 가야 할 사람이 왜 가지 못하는지 분노가 생긴다. 정부가 요양병원을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리·감독할 의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양병원이 만들어진 다음에도 어떤 형태로 운영하고 어떻게 지켜갈지 민간 차원의 관리·감시가 필요하다.

정리 신윤동욱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