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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초점 지적장애인에 대한 학대, 언제까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2017-09-13 11:58:16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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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에 대한 학대, 언제까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집안일 똑바로 못하냐” 시모로부터 15년간 정신적, 신체적 학대 받아온 지적장애여성
“노인의 투박한 표현, 장애인 가정의 일상적 모습”이라며 기소조차 되지 않아
 
등록일 [ 2017년09월07일 14시50분 ]
 
 

2000년, 지적장애인 H는 부모님끼리 약속으로 생전 처음보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남자 역시 지적장애인이었다. 두 사람은 남자의 부모와 함께 살았고, 집안일이나 농사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늘 잔소리를 들었다.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주로 시모인 A였다. H는 곧 임신을 했다. 하지만 산통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재래식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다. 변기에 빠진 아이는 죽었고, H는 오랜 하혈 끝에 병원에 실려갔다. 아이가 죽은 후, A의 정서적, 신체적 학대는 더 심해졌다. H는 2008년에 한 번 더 임신을 했지만 12주만에 A의 손에 이끌려 낙태 수술을 받았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시댁식구와 남편뿐인 H는 곧잘 막내오빠에게 전화해 하소연을 했다. 그의 오빠는 여동생이 세제 푼 물을 맞고, 욕설을 듣고, 일상적으로 맞거나 '숲에 묶어놓겠다'는 협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내용의 전화가 거의 매일 이어졌다. 결국 H는 2015년 이혼을 했다. 

 

H의 결혼식 당시 모습. 부부 양 옆으로 시부모가 앉아있다.
 

어느 누구라도 15년이나 일상적 괴롭힘을 당한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실제로 H는 불안증상으로 인해 한 시간에 한 번씩 깨는 수면 장애나 방광염, 위염 등 스트레스성 질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부당한 대우와 학대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스스로 대응할 방안을 알지 못했다. H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위는 오빠 K에게 전화해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고, 이로 인해 얼마나 불안한지 전달하는 것 뿐이었다. 

 

K는 동생을 대신해 경찰에 A를 고발하고, 이혼소송, 민사소송을 진행했다. 증거를 모으기 위해 동생이 거주했던 동네를 수시로 드나들고, 녹취록을 만들고, 진단서나 상담 소견서를 뗐다. 하지만 경찰은 ‘으레 그런 일’이라며 넘어갔고, 장애인 학대로 형사소송을 진행하려 했으나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설령 H가 당한 일이 사실이라고 해도 손해배상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K가 가장 답답했던 것은 H의 증언이 자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오염된' 발언으로만 해석되었다는 점이다. 경찰도, 검찰도 재판부도 H를 ‘지적능력이 떨어져 상대방의 질문 내용에 따라 휘둘릴 여지가 많고 의사표현 능력이 부족한’ 특징을 가진 사람으로만 바라보았다. 결국, H가 겪었던 일들은 가해자 A와 제3자인 동네 사람들의 증언에만 기반해 판단되었다. 경찰조사, 검찰 조사, 이어진 민사소송 1, 2심에 이르기까지, 이 많은 조사과정에서 H는 말할 수 없는 사람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K와 H의 통화 녹취록을 살펴보면, H는 일관되게 자신의 학대 사실을 전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K: 니는 밥 못 하제?
H: 아니, 해.
K: 아이, 엄마 못하면 뭐라 하나?
H: 응, 아침에 파리채
K: 파리채로 때려?
H: 응. 설익으면 안 돼.
K: 파리채로 때리고 막 하나?
H: 어, 말 안 들으면 (...) 밭에 나 두고 온대 
(2015년 5월 19일 통화 내용 중)

 

H: 오빠, 아까 어머니 토란밭에 갔다가 약 치며 물 안 줬다고 빠져, 막 빠져 죽인대
K: 물 안 줬다고 막 뭐라 그래? 아까?
H: 응 논에 빠줄라 해줬다
K: 막 혼났나?
H: 응.
H: 아이고, 그래 슬프나?
H: 응. 엄마 또 해.
(2015년 5월 21일 통화 내용 중)

 

H: 오빠, 그 저, 나 죽으면 오빠 와?
K: 누가 죽어?
H: 어, 나.
K: 니가 왜 죽어?(...) 같이 살아야지.
H: 응.(...) 오빠, 어머니, 아버지 없어도 오빠 와?
K: 어, 걱정 마래이.
(2015년 5월 23일 통화 내용 중)

 

H는 다양한 외부 기관에서 상담을 받기도 했는데, 모든 기관이 “H의 언어 표현력이 저하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본인이 경험한 학대 피해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확하고 일관되게 묘사하고 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사법부와 수사기관은 2년이 넘는 시간동안 계속해서 ‘증거 불충분'으로 H의 호소를 묵살해왔다. 민간 기관에서는 수 시간의 상담만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H의 의사를, 국가는 2년 동안 듣지 않았다.

 

H의 심리상담 소견서. 각각 다른 두 기관에서 상담했으나 모두 H가 시모로부터 받은 학대가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으로 드러난다고 판단했다.

 

H의 장애는 정서적이나 신체적 학대를 당해도 어쩔 수 없는 요인이자 그의 증언에 대한 사법기관의 불신을 정당화하는 기제로만 작용했지, 그 어디에서도 그가 받아온 요구가 부당한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근거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H씨의 진단서를 보면, 지적장애로 인해 신변처리에서도 타인의 지원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H씨는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상적 학대를 당해왔다. 그러나 봉화경찰서는 이를 “농촌 노인의 부드럽지 못한 투박한 표현과 피해자의 지적능력으로 피해자가 오해를 하는 부분이 많은 것으로 판단되며 이런 행위들은 장애인 가정의 일상생활 속의 모습으로 보여진다"라고 판단하여 불기소 의견을 냈다. H씨의 지적장애로 인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건데, 역시 지적장애인인 H씨의 남편, 즉 A씨의 아들에게는 이러한 것이 요구되지 않았다. 집안일이나 밭일을 ‘제대로’ 할 것을 요구받은 것도, 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15년간 온갖 ‘투박한 표현’을 들어야 했던 것도 오로지 H씨 뿐이었다. 

 

오빠 K에게 동생이 당한 일은 결코 ‘대단치 않은 일'이 될 수 없었다. K는 H가 겪은 고통을, 이것이 ‘별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K는 정말 온갖 곳의 문을 다 두드렸다. 동생을 대신해 앞장서서 증거자료를 모아 재판을 진행했고 온갖 민간 기관, 장애인단체, 언론사 등을 찾아다녔다. 심지어 검찰의 기각 결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2년이 넘는 법정 싸움은 기각과 패배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그에게 처음으로 작은 희망이 보였다. 그가 국민신문고에 제출한 민원이 경찰청과 여성가족부를 거쳐 봉화경찰서에 도달해 재수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회신을 받은 것이다. 2015년, 처음 H가 가정 내 학대 사실을 경찰에 고발했을 때 안동의료원 해바라기센터에서 제대로 된 조사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 인정되었다. 현재 봉화결찰서에서 H씨에 관한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있다.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한 손으로 잡기 버거운 양의 서류와 판결문을 안고 찾아온 K는 채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말했다. “지적장애인이라고 아무렇게나, 욕하고 때리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동생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15년 동안 쌓인 상처가 너무 많은데. 이거에 아무도 책임을 안 져도 된다고 자꾸 결과가 나오니까…저는 정말 끝까지 싸울거예요. 저희 동생도 그렇고 그 누구도 이런 일을 당해도 된다는 이야기 안 나오게. 끝까지 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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