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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모두에게 똑같은 한 표? 장애인에겐 선거 공보물 이해부터 어렵다
2018-03-20 09:28:08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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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행해야 하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19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행해야 하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저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24년 동안 살았습니다. 대선,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까지 많은 선거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후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공약을 가지고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거소투표일에 투표용지만 받았고 거소투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시설에 거주하더라도 선거와 관련된 사전정보를 충분히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후보자와 공약에 대한 공보물을 미리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모든 사실을 시설에서 나온 후에야 알았습니다” (김희선, 탈시설 당사자)


지방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참정권은 기본적인 권리임에도 시설 거주인이었던 김희선 씨의 이야기처럼 장애인에게 참정권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시설 밖 장애인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2017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사전투표소 3,516개소 중 2, 3층 또는 지하에 설치되었으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 등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설치된 경우가 644개소(18.3%)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와 관련된 정보제공에 있어서도 장애인은 차별을 받는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수어통역사가 있는 투표소라도 담당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어렵고, 시각장애인은 선거공보물·선거방송에서의 점자공보물 등이 충분하지 못해 선거 관련 정보를 얻기 어렵다. 발달장애인은 어려운 글로만 쓰여진 공보물 때문에 후보들의 공약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부모나 시설 종사자에 의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라는 강요를 받기도 한다.


이에 19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의 주최로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문재인 정부가 이행해야 하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발표에 나선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했다. 김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접근성 확보를 위해 모든 투표소는 1층 배치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의 전 과정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모든 장애유형에 맞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청각장애인을 위해 선관위 홈페이지에 수어통역사 배치현황을 안내하고, 투표소에 배치된 수어통역사는 청각장애인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명찰 등을 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비시각장애인과 동일한 정보의 양을 점자로 번역해 선거공보물로 제작·배포해야 하며,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그림, 사진, 동영상 등을 충분히 제공해 비밀투표가 가능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어 김 사무국장은 공직선거법이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공직선거법의 장애와 관련한 규정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당한 편의 제공을 의무화 하지 않고, 많은 조항들을 임의조항으로 담고 있거나, 발달장애인의 경우 아예 규정이 없고, 장애유형별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규정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참정권과 관련해 모든 사항들은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따른다’고 규정해 포괄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표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발표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
 

장애인거주시설, 요양병원 등 시설 거주인들의 ‘거소투표’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2002년 장애인거주시설인 꽃동네의 거소투표 대리 의혹이 처음 제기되었고, 2014년에도 진선민 의원실과 함께 장애인시설에서 강요에 의한 대리투표 의혹을 확인했다. 하지만 시설장은 무혐의 처분 받는 것으로 끝났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위해서는 “선관위가 조사과정에서 인권위 또는 장애인권리옹호기관과의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몸이 불편한 유권자에게 ‘거소투표’란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로 보여지지만, 실은 ‘배제’를 정당화 하는 제도다. 시설, 요양원 등에서 행해지는 ‘거소투표’는 거주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없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소투표 신청을 해야 한다면, 최대한 엄격한 기준으로 명시하고 불가피한 경우 시설 안 cctv가 설치된 장소에서 선관위가 직접 기표소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러한 지적에 김동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1과 행정사무관은 이번 지방선거 때부터 선관위가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우선, 선거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투표 안내자료를 배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는 “투표 절차 등을 그림, 확대문자를 이용해 설명하는 투표가이드북을 제작해 모든 (사전) 투표소에 비치하겠다. 또한 선거영상 등에 자막과 수어 화면을 삽입하고, 모든 연령층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간결하게 작성 된 플래시애니메션 영상을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모든 (사전) 투표소에 투표참여불편선거인용 4종 기구(특수형 기표용구 세트, 발달장애인용 투표가이드북, 투표안내 리플릿, 확대경) 19,000여 개를 제작해 별도 박스에 담아 비치하고, 이 물품을 신속하게 제공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투표소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급적 (사전) 투표소를 1층 또는 승강기 이용 가능 건물에 설치하고, 이번 지방선거부터는 시도 선관위 주관으로 장애인단체 등과 업무협의회를 개최”할 것이며, “장애인 유권자가 투표소를 사전에 체험할 수 있도록 장애인 유권자 대상 모의투표소를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