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또 하나의 1987 형제복지원을 생각한다’ 를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또 하나의 1987 형제복지원을 생각한다’ 를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최근 영화 ‘1987’로 다시 회자되고 있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같은 해 사건이 밝혀졌던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은 생존자와 그 가족들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들의 명예 회복과 진상규명은 아직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4년 19대 국회에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회기가 종료되며 폐기됐다.

또 지난 2016년 7월 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도 ‘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지금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진선미, 국민의당 권은희,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형제복지원 피해사건과 관련된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일 국가인원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 등이 주최한 ‘또 하나의 1987 형제복지원을 생각한다’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총 2부로 진행돼 1부에는 한신대학교 학술원 임미리 전임연구원의 ‘1987년과 도시하층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최종숙 연구원 ‘1987년 사회운동의 위계사다리, 개헌운동, 인권운동 그리고 주변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주윤정 선임연구원의 ‘망각된 1987과 형제복지원’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뒤이어 2부는 형제복지원에 대한 토론회로 국가인권위원회 조영선 사무총장이 좌장을 맡았고, 당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을 맡았던 김용원 변호사(전 검사),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한종선 대표, 한림대학교 조형근 교수, 연극인 임인자 씨가 토론에 참여했다.

형제복지원, 국가권력이 주도해 죄 없는 시민의 신체 자유 침해한 것

  ▲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의 담당 검사 였던 김용원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의 담당 검사 였던 김용원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토론에 참석한 김용원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에 대해 ‘극도로 잔인한 인권유린 만행을 저지른 사건’이라고 질타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형제복지원을 수사했던 검사로 지난 1986년 12월 21일 형제복지원 수용자 180여 명이 관장의 목장을 만들기 위해 울주 작업장에서 강제 노역한 것을 목격해 수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로부터 한 달도 되지 않은 1987년 1월 16일, 원장과 임원진 등을 구속하기위해 형제복지원에 갔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콘크리트 막사 가운데 한 곳을 가려고 하니 ‘검사님 여기는 가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들어가 보니 햇빛도 들지 않고, 굉장히 추운 곳에 폐결핵 환자들을 한 곳에 모아 놨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1987년 1월 16일 울주 작업장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180여 명의 형제복지원 수용자들과 형제복지원 원장과 직원 등 조사가 이뤄졌지만, 당시 형제복지원에 수용하고 있는 3,000여 명의 수용자는 수사외압으로 조사할 수 없었다.

특히 형제복지원 피해자 수는 1987년 1월 기준 당시 수용자가 3,174명이었고, 사망자는 형제복지원 문서상 500여 명이었다.

이에 그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개인의 범죄가 아닌 국가권력이 주도해 죄 없는 수많은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남녀 성인과 아동 수용자에 대한 감금, 무차별 폭행, 폭행치사, 성폭력, 정상적인 급식과 의료제공 거부, 학령기 아동에 대한 교육 불이행 등 ‘극도로 잔인한 인권유린 만행’을 저지른 사건.”이라며 “사망자 수가 형제복지원 문서상으로 500여 명으로 나타나있지만, 상당수 숨겨진 사망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또 생존피해자의 경우 대부분 장기간의 수용생활로 인해 신체·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이 많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등 부랑인수용시설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입법이 존재하지 않는 원인으로 ▲피해자를 대변할 사회세력의 부존재 ▲국민의 기본 인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지식인과 공직자의 부족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회의원의 기본 인권에 대한 개념 결핍, 신념 부족을 꼽았다.

그는 “헌법 제1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고, 국가는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경우 당연히 국가배상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형제복지원 특별법 또는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 등 다양한 방향으로 논의를 하고 있지만, 형제복지원 등 부랑인수용시설에 대한 수용에 따른 피해는 다른 과거사와 다르게 특수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개별화된 특별법 제정을 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며, 사회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을 위해 조속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당시 민주화운동, 배제됐던 우리가 숭고하게 바라봐야 하는가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는 “1987년 당시 민주화 운동과 형제복지원 같은 사회정화사업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추론을 했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독재정권을 이룩했고, 전두환 정권 당시 일어난 518광주민주화운동에서 많은 사상자가 났었고, 전두환 정권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안 좋은 여론을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장치는 군인을 분열시켜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당시 국민들도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등 대외적인 국민행사에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 불편한 것을 치운다는 전두환 정권의 명분에 동조했다.”며 “예를 들어 손님이 집에 오는데, 집을 청소하지 않으면 그 사람 됨됨이를 평가하듯 그 당시 대한민국이 그러지 않았느냐.”고 토로했다.

이어 “민주주의 개념에 대해 평등과 기회, 선택, 결정,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피해당사자처럼 부랑인으로 규정돼 치워진 사람에게는 그 어떤 평등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 기회 속에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다. 또 결정에서 자기에게 돌아가는 책임조차 없다.”며 “그 부분에서 과연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을 우리가 숭고하게 바라봐야 하는 결정적 사안인가.”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민주화운동을 숭고함에 대한 역사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386세대 그들만의 운동권이었다.’라고 이야기 한다.”며 “그들이 당시 포괄적으로 (사회 약자)끌어당겨주지 않는 이상 배제되고 버려지고 밀려났던 사람은 그 어디에도 주축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같이 버려지고 폐기된 사람들의 역사인식은 치워도 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 될 역사적인 한 획이었고, 꼭 필요한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 누군가는 배제됐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한종선 대표와 최승우 활동가는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제정과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부랑인수용시설과 관련된 ‘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 등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95일째 노숙 농성중이다.

  ▲ 지난해 11월 7일부터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한종선대표와 최승우 활동가가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 지난해 11월 7일부터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한종선대표와 최승우 활동가가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