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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죽음의 섬 선감도를 탈출한 소년들, 국회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다
2017-11-24 09:21:08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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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섬 선감도를 탈출한 소년들, 국회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다
선감학원대책위, 과거사법 개정 통한 조속한 진상규명 촉구
국회 안행위에 개정안 7건 계류중...‘조사대상 시기 확대’ 등 담아
 
등록일 [ 2017년11월23일 14시03분 ]
 
 
 

23일 '선감학원 아동국가폭력피해대책위원회'가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정부가 과거사법을 개정해 선감학원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하지만, 지옥 같은 선감도는 정말 저승보다 못했습니다. 9살, 10살에 불과한 아동들이 매일 모진 폭행을 당했습니다. 저희는 원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에게 그저 매 맞는 기계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어린나이에 꿈과 희망이 싹둑 잘린 채 우리의 생과 사를 세찬 바닷물 속에 맡겨야 하는 도박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40여 년전 빠져나온 섬에서의 경험을 전하는 김성환 씨(56)의 목소리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떨렸다. 그는 고작 10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선감도라는 작은 섬에 끌려와서 5년을 갇혀 살았다. 그렇게 섬에서 겪은 고통을 그는 다른 군더더기 말을 걷어내고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는 그 곳에서 단 한번도 ‘너희는 꿈이 뭐야? 희망이 뭐니?’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김 씨와 같이 어린 시절 모든 희망을 섬에 갇힌 채 빼앗긴 사람들이 처음으로 국회 마이크 앞에 섰다. 23일, 선감학원(仙甘學園)사건 피해자들의 모임인 ‘선감학원 국가폭력피해대책위원회’(아래 선감학원대책위)가 국회 정론관에서 40여년 만에 국가의 사과와 진상규명,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자리에는 19대 국회에서부터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에 앞장섰던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함께했다.

 

선감학원에서 겪은 피해 경험을 증언하고 있는 김성환 씨.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경기도 부천군 소속의 선감도(현재는 안산시 대부면 소속)에 설치된 소년 감화원이다. 일제는 도심의 부랑아를 섬에 가두고 태평양 전쟁에 이용할 후방병력으로 훈련시켜 탄광이나 금속제작소 등에 ‘취업’이란 이름으로 강제동원 했다. 선감학원은 해방 이후에도 경기도 관할로 이관되어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1982년이 되어서야 폐쇄되었다.


해방 후 선감학원 운영 실상은 일제때부터 더 가혹해져, 강제로 끌려온 소년들은 축사, 농사일, 양잠 등 강제노역에 동원되었고, 폭행과 노역을 피해 아이들이 바다를 헤엄쳐 탈출하려다가 익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섬 내의 야산에 소년의 시신 수백구가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경기도의회는 2016년 3월 4일에 ‘선감학원 희생자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17년 상반기에 진상조사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특위 활동만으로는 과거 정부 기록을 확보해 사건의 진상을 드러내는데 큰 한계가 있었다.


이에 선감학원대책위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사건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포괄적 과거사 해결을 목표로, 지난 2010년 활동을 종료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개와「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는 과거사법 개정안 7건이 올라와 병합심사중이며, 선감학원 피해자들 역시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통한 진상규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진선미 의원은 기자회견 발언에서 “어떤 분들은 이미 노무현 정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과거사 정리가 충분히 된 거 아니냐, 아직도 과거사 정리를 해야 하느냐고 말씀하신다”며 “하지만 아직도 피해자들과 가족들의 가슴 속에 과거사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빈민과 아동이어서 그들은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되었고, 또 그렇게 소외된 자들이어서 과거사정리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고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진 의원은 또 “제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루자, 비슷한 사건들에 대한 제보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오늘 선감학원도 그 중 하나이고, 청년들을 억지로 잡아가 간척사업을 시킨 서산청소년개척단 사건도 비슷한 사건”이라며 “권위주의 정부는 이들에게 부랑인, 깡패, 윤락여성이라며 거짓된 멍에를 뒤집어 씌웠다. 피해자들에게 덧씌워진 사회적 편견 때문에 피해자들은 아직도 자신의 피해사실조차 밝히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지적했다.


선감학원대책위는 기자회견문에서 “선감학원 원생들은 겨우 여덟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집주소를 모르거나 옷을 남루하게 입었다는 이유로 납치되다시피 시설에 수용되었다”며 “그런데 세상은 우리들이 마치 범죄라도 저질러서 외딴 섬에 격리되어야만 했던 아이들로 오해하고 있다. 그것은 마땅히 밝혀져야 했던 선감학원의 진실이 지금껏 묻혀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가 선감학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포함해, 헤어진 가족과의 상봉, 정신적·육체적 피해에 대한 배상,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편,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과거사법 개정안은 종전 법이 진실규명의 범위를 해방 직후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기’로 정한 것을 ‘1993년 2월 24일까지’로 확장하고, 진실규명 조사방법에 유해발굴 및 현장조사, 청문회와 고발·수사의뢰 등을 추가했다. 다른 의원들의 개정안에서도 세부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진실규명 범위를 확장하고 과거사재단을 설립해 피해자 명예회복 및 지속적 역사교육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