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료실 > 이슈와 칼럼

이슈와 칼럼

이슈와 칼럼 통합학급 증설은 왜 정답이 되지 못했나
2017-10-27 08:25:14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266
175.211.57.224
통합학급 증설은 왜 정답이 되지 못했나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갈등 이후 특수학교 설립 찬반 논의에 매몰
통합교육 아닌 분리교육 찾게 되는 현장...'분리 후 통합' 방식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등록일 [ 2017년10월25일 11시32분 ]
 
 
 

‘통합교육'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24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이자 당사국의 의무이다. 한국에서도 특수교육법이 2008년 제정된 이후, 꾸준히 통합교육을 주요 목표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통합교육이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분리교육, 즉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요구가 뜨겁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주민 간 갈등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면서, 특수학교 설립 찬반이 곧 장애인 교육권에 대한 입장으로 여겨지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아예 18개 구에 특수학교를 하나씩 짓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왜 장애인 교육권 보장 요구는 통합학급 증설이 아니라 분리교육인 특수학교 신설 쪽으로만 가는 것일까. 통합학급과 특수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두 어머니의 이야기와 12년간 통합교육을 받은 당사자, 그리고 특수교사 등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그 이유를 추적해봤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주민들의 거센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자 장애부모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고 있는 모습.
 

통합교육 현장에서 밀려나 특수학교로..."마음은 편하지만, 학습은 포기했어요"

 

강재현(가명) 군은 뇌병변 1급이고, 희귀난치병인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을 가지고 있다. 이 질병은 근육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근육이 약화되거나 없어진다. 현재 재현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3학년 1학기 때까지는 A 초등학교 통합학급에서 공부하다가 2학기에 특수학교인 정민학교로 전학을 갔다. 재현의 어머니인 김미정 씨(가명)는 특수학교로 전학을 간 가장 큰 이유로 통합학급을 담당했던 특수교사와의 갈등을 꼽았다.


"입학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부터 탐탁치가 않았어요. 특수반 담당 선생님이 혼자 화장실 갈 수 있는지 묻더니 '혹시 교실에서 실수하더라도 바로 처리는 어렵다'고 하는 거예요. 이후에도 반찬이랑 밥을 다 믹서기에 갈아서 먹이고,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한테 '인사 안 하냐'고 소리 지르는 등 문제가 많았어요."


김 씨는 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기도 했다. 교사의 사과로 일단락되었지만 오랫동안 깊어진 골은 쉽게 메워질 수 없었다. 더구나 당시 재현이 다니던 학교에는 저학년 담당 특수교사 한 명, 고학년 담당 특수교사 한 명뿐이었기 때문에, 4학년 때까지는 해당 교사의 지도를 받는 것이 불가피했다.


"당시 도움반에 보조 인력, 즉 특수교육실무사나 공익요원은 한 반에 한 명씩밖에 없었어요. 교사와 보조 인력 둘이서 4~5명 되는 아이들을 돌보는 게 쉽지 않았겠죠. 그래서 선생님도 쌓인 게 있었을 거고... 그래도 '특수교육'을 하는 분이 장애가 있는 애들을 그렇게 귀찮게 여기는 게 무척 실망스러웠죠."


그래도 2학년 때까지는 견딜 만 했다. 재현이가 속한 본 반 담임 선생님들, 그러니까 ‘일반 교사'들이 재현이를 많이 신경 써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재현의 장애 특성보다 수업 진행을 우선시했고, '방해'가 되는 재현의 장애는 곧잘 야단의 근거가 되곤 했다.


"재현이 장애 특성상 팔을 딱 붙이고 못 있고 자꾸 위로 올라가거나 벌어지곤 해요. 긴장하면 숨소리도 크게 나고요. 실무사 선생님 한 분이 특수반 애들 4~5명을 돌아가면서 돌봐줘야 하니까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못 가잖아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수업시간에 가야 하거든요. 이런 부분들을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방해된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학교에 다녔던 이유는 재현이가 원했기 때문이었다. 재현이는 통합 유치원을 다녔는데, 같이 유치원을 다니던 아이들 대부분이 그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김 씨는 재현이에게 1학년 때부터 '정민학교에 갈지' 물었지만, 재현이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싶다며 거절했었다. 하지만 3학년 1학기가 끝난 후, 재현이는 결국 정민학교를 선택했다.


"학교가 전반적으로 장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특수교사와의 갈등이 계속되고 재현이가 학교에서도 소외되니까 교장 선생님께까지 제가 하소연을 했어요. 특수학급 이왕 만들어놨으니 통합교육 잘 되게 좀 도와달라고.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정부에서 하라고 하니까 하는 거예요'라고 하시데요. 어쩌겠어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그렇다면 특수학교로 전학 온 지금,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특수학교라고 해서 통합학급에 다닐 때보다 인적 지원이 더 많아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한 반에 특수교사 한 명, 실무사 한 명이 있다. 다만, 아이들이 '본 반'으로 뿔뿔이 흩어지지 않으니 특수교사와 실무사가 한 공간에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것 정도가 달라졌다.


"일단 마음은 훨씬 편하죠. 선생님과 학부모, 다른 친구들까지 모두 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까요. 재현이도 훨씬 밝아졌고요. 하지만 학업은 사실상 포기했어요. 정민학교에는 발달장애인 학생들이 많아서, 수업이 그 친구들에 맞춰서 진행돼요. 재현이는 이제 수업시간이 따분해진 거죠. 이미 한글도 다 알고 하는데, 수업시간에는 곰 세 마리 부르고 있으니까요. '개별화 교육' 상담할 때 수준에 맞는 교육을 요청드렸지만, '기본교육과정' 학교라서 어렵다는 거예요. '통합교육과정' 제공하는 특수학교 가려면 주소를 옮겨야 하고요. 결국, 학교에서 학업은 포기하고 집에서 따로 공부하고 있어요. 한 달에 8만 원 정도 하는 유료 사이트로요."

 

특수학교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간담회가 지난 9월 열렸다. 김 씨도 이날 참석해 '개별화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통합초등학교 중도중복반 다니는 준영이, "만족하지만, 중학교는 고민하고 있어요"

 

허준영 군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다. 뇌병변 장애와 발달장애가 있다. 준영이는 1년 유예 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같은 반 친구들보다 한 살이 많다. 준영이의 엄마인 서보림 씨는 처음에 준영이를 부개동에 있는 특수학교인 은광학교에 보내려했다. 하지만 준영이가 사는 구월동에서는 차로 30분 거리이고, 통학버스가 있긴 하지만 학생을 다 태우다 보면 2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점 때문에 고민이 컸다. 그때 마침 집에서 가까운 인천 만월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던 다른 부모로부터 만월초 특수반에 4명의 '빈자리'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준영이는 운이 좋았죠. 준영이 입학하는 해에 만월초에서 4명이 졸업했고 딱 4명이 지원을 했으니까요. 만약 5명이 지원했으면 제비뽑기를 했을거예요. 만약에 떨어졌으면...준영이는 1년 더 유예했거나 2시간 거리 특수학교를 갔겠죠."


현재 만월초 '도움반'은 총 두 개. 1반은 장애 정도가 조금 더 심한 '중도중복반'이고 2반은 경증 장애아동들이 모여있다. 특수교사는 두 명이고 실무사가 네 명이다. 단독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있어서 보조 인력이 한 명 더 지원되었고, 구청 지원으로 아이들이 특수반에서 수업을 듣는 오전 시간에만 근무하는 인력이 한 명 더 있다. 도움 2반 학생들은 경증장애로 본 반에서 대부분 수업을 듣기 때문에 중도중복반에 속해있는 학생들은 거의 1:1 돌봄을 받고 있는 셈이다.


"특수반 선생님이 처음에 준영이 입학했을 때 반마다 돌면서 준영이가 태어날 때 어땠고, 그래서 지금 어떤 상태인지, 하지만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셨어요. 그게 다른 아이들이 준영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학교는 교장 선생님부터 일반 선생님들까지 모두 마인드가 좋아요. 그래서 운동회나 현장학습도 준영이가 다 참석했어요. 준영이와 같이할 수 있는 활동이 뭔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학교 전반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세요."


교사들의 지도와 더불어 일상생활에서의 꾸준한 접촉을 통해 아이들은 준영의 존재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친구들은 처음 준영이가 소리를 지를 때는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아서 소리를 지르는지, 나빠서 지르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쉬는 시간에 준영이를 찾아와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체육 시간이나 학예회에 준영이와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친구들과 함께 운동회에 참석한 준영이. 서보림 씨 제공.
학예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준영이. 서보림 씨 제공.

 

이렇게 준영이는 통합학급에서 나름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서 씨는 중학교도 통합학급이 있는 일반 학교로 보낼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지금도 준영이가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고 손을 물거나 울면 본 반 애들한테 영향을 미칠까 염려가 많이 돼요. 아직은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괜찮지만,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본 반 수업에 준영이가 들어가는 걸 다른 부모들이 ‘괜찮다’고 할까요? 다른 애들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고 학교에 민원을 넣을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결국 특수학급에만 계속 있어야 한다면, 일반 학교에 보내는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중학교는 새로 생긴 특수학교로 보낼까 고민 중입니다.”

 

특수학교 증설만이 정답은 아냐...‘진정한 통합교육’ 위한 환경 조성 고민해야 할 때

 

위 두 사례를 봤을 때, 통합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충분한 인력, 특수교사의 역량, 그리고 일반 교사와 비장애 학생 및 학부모들의 장애 인식이다. 오랫동안 특수교육 현장에서 지적되었던 문제이고, 교육부나 각 지자체 교육청 역시 이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과제를 현장에서 잘 수행하기 위한 해결 과제는 무엇일까.


초, 중, 고등학교 12년간 내내 일반 학교를 다녔던 장애인 당사자 홍성훈 씨는 “운이 너무 좋아서 일반 학교를 무사히 다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홍 씨가 중학교 올라갈 무렵, 서울시 교육청이 '보조인력' 제도를 도입했다. 홍 씨 한 명을 위해 투입된 보조교사는 필기보조, 식사보조 등의 활동을 지원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공개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홍 씨 앞에서 혐오 발언을 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다만,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발달장애인 친구들은 놀림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홍 씨는 회상했다.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비장애인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 장면을 많이 봤어요. 통합 교육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 문제가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나와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진 사람을 대해본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장애 인식 개선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통합교육은 제대로 된 교육 체계를 갖춘다면 장애/비장애 학생 모두에게 자신과 서로 다른 조건에 놓인 사람을 ‘감각’하는 훈련을 하는 데 탁월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특수학교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무릎 꿇은 장애 학생 어머니의 모습’을 자극적으로 다루는 보도들로 인해 가려지는 면이 많다고 봐요. 진짜 논의되어야 할 것은 특수학교가 왜 필요한지, 특수학교가 세워진다면 그곳에서 어떤 교육을 받게 될 것인지 등이지요.”


특수학교와 통합학급이 있는 일반학교에서 모두 근무해본 경력이 있는 허영진 특수교사는 통합교육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한국교육 현실에서, 특수학교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교육이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국제적 흐름인 지금, '물리적 통합'에 그치지 않고 '화학적 통합'을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허 교사가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 것은 안정적인 특수교원 확보이다. 2016년 특수교사 법정정원 확보율은 65.9%였다. 문재인 정부는 향후 5년간 특수교사를 5330명 충원해 법정정원 확보율을 92%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멘토링 체계’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저경력 교사와 고경력 교사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어려움을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수교육에 대한 근본적 시각 자체가 변하는 것이라고 허 교사는 강조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분리 후 통합’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어요. 특수교육 대상자를 일단 선별하고 분리한 후에 통합을 궁리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통합학급이 있는 일반 학교에서 ‘특수’자가 들어간 건 죄다 특수교사에게 떠넘겨져요. 학교 차원의 지원이 거의 없다면, 특수교사 한두 명이 ‘통합교육’이라는 짐을 지고 있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 특수교사의 역량에 통합교육이 전적으로 맡겨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겁니다. 일반 교육에서 먼저 특수교육을 자신들의 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요. 교육부와 교육청 차원에서 패러다임의 전복적 변화에 대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