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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장애인 선입견은 무지하다는 생각에서 출발
2017-10-20 08:43:44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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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선입견은 무지하다는 생각에서 출발
유일한 선은 앎이요, 유일한 악은 무지다-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10-19 14:36:091
 
‘유일한 선은 앎이요, 유일한 악은 무지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말이다. 굳이 이런 유식한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줄기차게 공부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세대이다.

아는 것이 왜 힘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사회 초년생일 때는 학력에 따른 고용제한을 보며 ‘아! 이래서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구나.’하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 커리어가 생겼을 때는 정보력이 곧 경쟁력이라는 것을 경험하며 아는 것이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은 성공과 부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앎이 유일한 선이고 무지가 유일한 악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실감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새학기 새로운 교수님과 학우들의 태도에 나는 짐짓 당황스러웠다. 그들의 행동과 말을 배려라고 생각하기에는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강의 내용을 녹취하기 위해 강의실 제일 앞줄에 나를 돕는 근로장학생과 함께 앉았는데 과목마다 들어오시는 교수님은 앞으로 학과 수업을 진행할 때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를 내가 아닌 근로장학생에게 물었었다.

내 청각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뻔히 나를 옆에 앉혀 높고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나에 대해 얘기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들의 행동은 나의 인격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우들도 과제를 위해 조를 편성할 때 나를 깍두기 취급을 했다. 조를 편성하고 난 뒤 남은 나를 아무 조에나 집어넣는 것이다. 어찌 해석하면 장애로 학업이나 과제 수행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미리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이 긍정적이지 못해서일까? 나는 그들의 태도에서 그런 배려심보다 내가 쓸모없고 도움이 안되는 존재로 여기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설혹 내 직관이 틀렸다하더라도 내 생각이나 의사를 배제시킨 그들의 행동은 배려가 아니라 내 인격이나 자질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태도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자존심은 그들의 행동에 무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시하지 마.’하고 대놓고 소리칠 수도 없었다. 그들이 스스로 나를 무시하지 않게 해야 했다.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내 감정과 인격을 무시하는 그들에게 나의 존재부터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보란 듯이 강의시간에 교수님의 질문에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나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서 번쩍번쩍 손을 들었다. 그리고 개인과제는 물론 조별 과제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적극적이었고 발표에 있어서도 모든 내용을 암독하여 비장애 학생들과 다름없이 수행하였다.

정안일 때 나는 이미 대학 과정을 수료했으므로 과제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는데 용이했고 이런 이유로 과제의 전체적인 방향을 잡고 자료 수집이나 문제 해결 방향을 제시하였고 내가 속한 조의 프레젠테이션은 항상 내가 담당해서 했다.

한두시간의 프레젠테이션을 아무런 자료도 보지 않고 발표한다는 것은 단순히 암기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발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숙지해야만 막힘없이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처음 조별 과제에서 나는 일부러 자진해서 내가 발표하겠다고 나섰다. 학생들은 딱히 뭐라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맡겼겠지만 내심은 엄청 불안했을 것이다.

대학 입학 후 첫 조별 발표에서 한 시간 가량의 프레젠테이션을 마쳤을 때 강의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상황을 알 수 없었던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하실 분 계십니까?”

그리고 한 학생이 말했다
“어떻게 그 많은 내용을 외웠나요?”

그 말과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대단하다’라는 소리와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후 나의 대학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대로였지만 나를 대하는 교수님과 학생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장애가 있으니까....’가 아닌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으로 모두들 나를 존중하고 의견을 물어왔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깍두기가 아니라 같은 조가 되기를 바라는 학생이 되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다른 학생들은 오픈북으로 시험이나 퀴즈를 풀 때조차 교수님은 “경미씨는 잘하니까 그냥 아는 데까지 적으세요”하고 말할 정도였다. 형평성에서 보면 보지 못하는 나에게는 불합리했지만 나는 무시 대신 차라리 이런 불합리가 더 낫다는 마음이었다.

그들이 나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나는 앎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비장애인들은 일반적으로 신체적 장애가 있으면 지적으로도 비장애인들보다 떨어질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어릴 적부터 장애를 가지고 자랐다면 분명 학습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부단한 노력으로 비장애인 못지않은 학력과 능력을 가진 장애인들도 많다.

이런 비장애인들의 사고 역시 선입견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으레 장애가 있으면 지적 수준이 낮을 거라 짐작한다.

택시 기사님들이나 관공서의 관계자 등 비장애인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보이는 무시는 단순히 장애 때문이라기보다는 장애가 있으니 지적 능력도 떨어질 거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이런 비장애인들에게 무시하지 말라고 소리쳐도 비장애인의 눈에는 그런 모습조차 그들의 비합리적인 사고를 확인시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비장애인들과 대등하게 처우를 받고 무시나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앎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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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경미(kkm75@kbuwe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