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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초점 근로능력평가가 사람을 죽였다
2017-09-01 08:30:12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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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능력평가가 사람을 죽였다… 한국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국가배상 소송한다
인공혈관교체 수술 후 일상생활도 힘든 사람에게 ‘일해야 수급비 준다’
근로능력평가의 문제점에 맞서는 중대 소송...유족 “국가가 죽였다” 울분
 
등록일 [ 2017년08월30일 17시15분 ]
 
 
 

고 최인기 씨의 부인 곽혜숙 씨가 수술 후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고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있다.
한 남자가 심장질환으로 더는 일할 수 없게 되어 질병 수당 신청을 한다. 이를 위해 ‘의료 전문가’와 면담하지만, 전문가는 심장 질환과 관계없는 질문만을 할 뿐이다. 결국 남자는 ‘사지 멀쩡하기에’ 근로 적합 판정을 받는다. 결국 그는 질병 수당이 아닌 구직 수당을 신청한다. 구직수당을 받으려면 구직 활동을 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나 사실, 그는 일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어렵게 항고 날짜를 받고 면담하러 간 건물 화장실에서 그는 쓰러진다. 항고문은 유서가 된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내용이다. 그리나 그보다 앞선 2014년 8월 28일, 한국에서 고 최인기 씨가 그처럼 죽었다. 최 씨의 3주기이자 국가손해배상 소송 소멸시효가 완료되는 2017년 8월 28일, 고 최 씨의 부인 곽혜숙 씨는 수원시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국가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기초법바로세우기 공동행동,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아래 민변) 공익인권변호센터는 30일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이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의사 진단 무시하고 ‘근로능력 있음’ 평가
수원시, 수년간 ‘없음’ 판정해놓고 아무 의심 없이 수용 후 노동시장으로 내몰아

 

버스 운전기사였던 고 최인기 씨(사망 당시 만 60세)는 2005년 회사 정기검진에서 심장혈관 이상을 발견했다. 흉부대동맥류 이상으로 밝혀져 늘어난 대동맥을 인공혈관으로 바꾸는 대수술을 2005년, 2008년 잇따라 받았다. 수술 후에도 심혈관계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아 더는 일할 수 없게 된 최 씨는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다. 수원시는 최 씨를 근로능력이 없는 ‘일반 수급자’로 선정했다.
 
2012년 12월 1일, 지자체에서 하던 근로능력평가가 국민연금공단으로 이양되면서 근로능력평가 심사가 강화됐다. 이는 최 씨에게도 적용됐다. 그전엔 한두 차례 병원 정기검진을 받는 게 전부였으나 최 씨가 사는 수원시 권선구청과 주민센터는 6개월에 한 번씩 근로능력진단서 제출을 요구했다.

 

2013년 10월, 또 한 차례의 근로능력평가가 진행됐다. 당시 담당 의사는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에 “안정 시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으나 계단을 오르는 등의 신체활동 시에는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함”이라고 기재했다. 이러한 의사 진단은 보건복지부의 ‘근로능력평가의 기준 등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3~4단계의 위험 수준이나, 공단은 의사 진단을 무시한 채 가장 양호한 상태인 1단계로 평가했다.

 

수원시는 수년간 최 씨에 대해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하고 사례관리를 해왔음에도 공단의 결과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수원시는 공단 결정에 따라 ‘근로능력 있음’으로 판정하고, 다음 해 1월 최 씨는 일반 수급자에서 조건부 수급자로 변경됐다.

 

당시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자활역량평가 결과 70점 이상(총점 100점) 받은 사람만 고용센터에서 실시하는 고용노동부 자활사업으로 배정하고, 그 외엔 노동 강도가 낮은 복지부 자활사업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 자활역량평가에서 최 씨는 5점을 받았음에도 고용센터의 취업지원사업에 배정됐다. 이후 최 씨는 수원고용센터에서 1달 넘게 교육을 받고 2월부터 집 근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자 최 씨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됐다. 감기 떨어질 날이 없었고 부종도 심해졌다.
 
결국 2014년 5월 17일, 최 씨는 일하던 중 고열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6월경, 교체한 인공혈관 주위로 감염이 진행된 사실이 확인됐다. 수술을 했으나 재발됐고, 결국 개복한 상태에서 다시 봉합하지 못한 채 두 달 동안 중환자실에 있어야만 했다.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에도 공단으로부터 ‘왜 일하지 않느냐’며 전화가 왔다. 부인 곽 씨가 상황을 말하자 공단 직원들이 확인차 병원에 찾아왔고, 이후 최 씨는 일반 수급자로 변경됐다. 그러나 8월 28일, 최 씨는 결국 사망했다.

 

기초법바로세우기 공동행동 등이 30일 서초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한국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고 최인기 씨의 죽음에 대한 국가손해배상 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보공개청구 했지만 어디서도 책임 있는 답변 안 해, 유족 “국가가 죽였다” 울분

 

고 최 씨의 부인 곽혜숙 씨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남편 사진을 들어 보이며 “내가 이 사진들을 다 찍었어요. 옆에서 지켜보며 혹시나 살을까, 살을까, …이 생각으로 내가 그 고통을 참았는데”라며 북받치는 울음을 삼켰다.

 

“개복하고 중환자실에 있는데 국민연금공단에서 전화가 왔어요. 왜 일 안 하느냐고. 제가 당신네들이 지금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러 오라고 했을 때 공단에서 거짓말인 줄 알고 사실 확인하러 왔어요. 남편 모습 보고 깜짝 놀라더니, (의료)1종 만들어주더라구요. 1종이 무슨 소용 있어요. 코마(혼수상태)에 빠져있는데. 지금까지도 한마디 대답이 없어요. 자기네들은 원리원칙대로 했다고. 용서할 수가 없어요. 국가가 우리 도와준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수술도 우리 돈으로 다 했어요. 나라에서 죽였어요. 제가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겠습니까.”

 

남편 사망 후, 곽 씨는 빈곤사회연대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남편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고자 했다. 대체 왜 근로능력있음 판정을 받았는지, 왜 그런 일자리를 얻을 수밖에 없었는지. 복지부와 수원시 권선구청, 공단에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어디서도 단서를 얻지 못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당시 복지부는 ‘그런 정보 없다’며 정보부존재 처리를 했고, 권선구청은 아무런 답변도 없이 공단으로 질의를 이송시켰다. 공단은 해당 질의에 대한 답변은 이후 본인들의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기에 비공개 처리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김 사무국장은 “근로능력평가는 공단이 하고, 취업 여부나 결과 전송은 각 지자체가 하며, 이러한 전체 계획을 내놓은 곳은 복지부다. 그런데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업무 추진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면서 “분업화가 되면서 수급자의 권리구제는 어디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복지는 권리이며, 국민 누구나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취지이다. 그러나 수급자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의 신청을 할 수 없거나 호소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면 그것은 절대 권리로서 작동할 수 없다.”면서 “수급자의 권리가 핑퐁 당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소송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엔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다고 되어 있는데 대체 어떻게 도왔기에 사람이 죽은건가”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왜곡하는 제도가 바로 근로능력평가제도다. 현재는 자활을 통해 탈수급 시키는 게 아니라 사람을 제도 바깥으로 방출시키고 있다. 반드시 지금의 제도를 없애고 양질의,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로 재탄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상교 민변 공익인권변호센터 소장도 “이 소송은 공단과 수원시를 상대로 하나 실질적 피고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빈곤층을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는 조건부 수급, 근로능력평가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면서 “다시는 제2의 최인기 님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