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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초점 장애부모 둔 비장애자녀들의 심리적 딜레마
2017-08-30 09:18:20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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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부모 둔 비장애자녀들의 심리적 딜레마
‘장애부모 도와야’ 자녀들에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08-29 17:54:151

 

필자는 시각장애가 있는 엄마와 그 자녀들로 구성된 ‘아이 위드 맘스’라는 자조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특별한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모두 비장애 아이들이다.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참여중인 엄마 한분이 모임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아이가 다른 약속을 핑계로 모임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3, 4살의 어린 아이도 아니고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의 의사를 무시할 수도 없고, 설득해서 데려가려 해도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호락호락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모두들 자식 키우는 엄마인 만큼 회원의 입장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아이들을 제외한 엄마들만의 모임에서 오랜만에 그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그 아이가 모임에 오지 않으려는 이유가 단순히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장애가 잇는 경우 자녀들은 또래들보다 더 빨리 어른스러워진다.

이런 아이의 모습에 비장애인들은 ‘착하다’, ‘얌전하다’, ‘대견하다’며 칭찬하지만 엄마의 마음에는 내 장애 때문에 또래 아이들처럼 투정도 부리지 않고, 떼도 쓰지 않는 애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쓰리기도 하다. 그나마 가족 중 비장애인인 아빠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으면 아이는 나에게 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또래 아이들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앞서 올린 글에서 ‘Children of Deaf Adult’라는 코다의 존재에 대해 얘기 했었다. 그들의 부모가 농인이라는 사실이 다를 뿐 장애 부모들에게는 모두 코다와 같은 존재가 있다.

부모 모두 중증 시각장애가 있거나, 지체장애가 있는 등 부모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정의 아이들. 코다들이 느끼는 감정과는 또 다른 아픔과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사물을 인지하고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는 순간부터 부모의 손발이 되어주고, 눈이 되어주어야 하는 아이들. 코다들이 농인과 청인의 경계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했다면 우리 아이들은 장애와 비장애라는 구분에서 엄연히 비장애인으로 특별한 의사소통이나 문화의 차이 없이 성장하기 때문에 코다처럼 ‘청인인가? 농인인가?’와 같은 정체성의 혼란은 없다.

그러나 코다는 최소한 농인사회 안에서는 부모를 도와야 한다는 부담은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자신은 볼 수 있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뿐 아니라 집안에서도 부모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대신해야만 하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끼며 생활하게 된다.

자조모임 회원의 아들도 그런 책임감과 의무감에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엄마, 아빠가 모두 중증 시각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이 가정은 다른 회원의 가정과 달리 친가나 외가의 왕래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모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비장애인은 활동바우처 선생님이 전부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선생님이 없을 때에는 아이가 아빠, 엄마의 일상을 도와주는 생활이 어릴 적부터 당연시되며 자란 것이다. 부모를 대신해 물건을 찾아주고, 식탁을 차리고, 어지럽혀진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해야 했으며 외출에 있어서도 아이는 부모의 보행을 도와주고 챙겨야만 했던 것이다.

자조모임 때 항상 엄마 곁을 지키며 하나하나 챙기는 아이를 우리는 착하다며 칭찬했었다. 엄마 몫의 김밥을 챙겨 호일까지 벗겨주는 아이의 모습에 엄마를 위하는 마음이 예쁘다고만 생각했었다.

김밥을 집다가 몇 알을 김밥을 떨어트린 엄마의 호일 위에 자신의 김밥을 덜어주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어른스러워 짠하기만 했다. 모든 아이들이 논다고 정신없을 때 그 아이만이 수시로 엄마를 찾아와 살피곤 했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놀아”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변함없이 엄마를 살피러 오곤 했다.

아이와 직접 상담해보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얘기나 아이의 행동 패턴을 볼 때 아이는 부모를 돕고 챙겨야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에 그런 상황 자체를 회피하려는 듯 보였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데 챙기지 않고 살피지 않으면 자신은 나쁜 아이이고 스스로도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 즉, 부모와 함께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려는 듯 보였다. 학교 수업이 마치면 거의 친구집에서 놀았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서 밖으로 나간다고 한다. 엄마의 잔소리나 심부름을 피해 밖으로 나도는 게 아니라 부모를 챙기고 살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에 의한 심리적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 친구가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을 내 딸아이의 모습을 통해서 나 역시 느끼고 있다. 딸아이와 단둘이 외출할 때면 딸아이는 내 손을 절대 놓지 않는다. 그러나 아빠나 다른 비장애인이 있으면 딸아이는 내손에서 벗어나 혼자 앞서 걷거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늦장을 부리기도 하고 어쩔 때는 혼자 쌩하니 달려 나가기도 한다.

아이에게 도와달라고 청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엄마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알아 간다. 그래서 자연스레 엄마의 보행이나 일상을 도와주게 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것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처럼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자신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나이에 아이는 자신 뿐 아니라 엄마까지 신경 쓰고 챙겨야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와 손을 잡는 행위는 다정함이나 사랑 외에 엄마를 지키고 보호해야한다는 책임과 의무도 담겨 있는 것이다.

어디에도 속박 받지 않고 자유로이 띄어 놀며 주위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그러나 아이는 그런 마음을 말이나 행동으로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엄마를 도와줄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 때에만 안심하며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자신이 짊어진 책임과 의무를 대신해 줄만한 비장애 가족도 친지도 없었기 때문에 부모를 챙기고 돌보는 것에 대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있는 듯 보였다.

소설 데프 보이스의 주인공 코다 아라이가 들리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며 그들과 멀리하려 했던 것처럼 이 친구는 부모를 챙기고 도와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간혹 비장애인들은 딸아이에게 “엄마 챙겨야지.” 혹은 “엄마 손 잡고 가야지.”하고 말한다. 나는 사실 그들이 딸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싫다. 딸아이가 나의 손을 잡지 않거나 챙기지 않는 경우는 자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여길 때이다.

엄마 혼자 할 수 있을 때, 자신 외에 누군가가 있을 때. 그런데 타인이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함으로 해서 아이는 엄마를 챙기고 돌보는 것을 자신의 책임과 의무로 느끼며 그렇게 하지 않는 자신이 마치 나쁜 아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까봐 염려되기도 하다.

부모의 장애로 아이가 짊어지고 감내해야 하는 것들은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주며 그로인해 아이들은 지쳐갈 수도 있다.

부모를 챙기고 도와야한다는 마음과 자신도 또래 아이들처럼 지내고 싶다는 마음사이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나쁜 아이라며 자책하지는 않을지...

사회로부터 부모를 챙기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고, 보지 못하는 부모와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 비장애인들의 시선을 오로지 혼자 받아내야 하는 비참함과 외로움, 어쩌면 벗어나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자유롭고 싶지만 부모라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이는 딜레마에 빠져 방황할 수도 있다.

나는 항상 기도한다. 내 존재가 아이에게 굴레가 되지 않기를, 세상 밖으로 자유로이 날아가려는 아이의 발목에 족쇄가 되지 않기를, 그런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용기와 지혜를 주십사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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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경미(kkm75@kbuwe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