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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공짜로 밥 먹여주고 재워주는 시설.. '나는 왜 시설 밖으로 나왔는가'
2017-08-25 14:55:58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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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밥 먹여주고 재워주는 시설, 왜 나왔냐고?’ 이 목소리를 들어 봐
‘나는 왜 시설에서 나왔나’ 탈시설 장애인 구술 기록 담은 책 제작발표회 열려 서중원 작가 “탈시설 이후, 정말 사람답게 산 역사 기록해야 한다”
등록일 [ 2017년08월23일 21시16분 ]

얼마 전, 대구시립희망원에서 7년간 309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왜 죽었는지, 사회는 알지 못한다. 이를 말할 당사자도 없고, 그의 삶을 증언할 사람도 없기에.
 
이 사회에 ‘몫이 없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냥 사라진다.’ 이야기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반면, 삶의 서사를 드러내는 것은 사람의 존엄을 회복하고 그를 사회 구성원으로 위치 짓는 일이다. 그의 이야기가 공적 공간에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그의 삶에 연결된 사회 시스템의 씨줄과 날줄을 발견하고, 그 사람과 나의 연결고리를 깨닫게 된다.
 


탈시설 장애인 11명의 목소리를 글로 기록한 서중원 구술기록노동자 서중원 구술기록노동자는 지난 1년간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장애인 11명을 만났다. 정하상, 홍윤주, 신경수, 남수진, 김은정, 김진석, 최영은, 이종강, 김범순, 이상분-유정우(부부). 그 삶을 글로 담았다. ‘무색무취’한 시설에서의 삶과 탈시설한 뒤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지금 현재의 모습을.
 
이 기록은 곧 정식 단행본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그에 앞서 탈시설 장애인 구술기록 제작발표회 ‘나는 왜 시설 밖으로 나왔는가?’가 23일 오후 2시 서울혁신파크 미래청에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주최로 열렸다. 이날 제작발표회엔 인터뷰이로 참여한 탈시설 장애인들과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서중원 구술기록노동자를 비롯해 여준민 발바닥행동 활동가, 이영남 한신대 교수, 유해정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활동가가 함께했다.
 
- “그 안에만 장애인 있고, 시설 밖엔 장애인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어”
 
인터뷰에 참여한 장애인들은 “시설은 감옥”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형기 없는 감옥. 자유시간조차 일과시간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 곳.
 
“민들레야학에 오고 나서야 먹고 싶은 거 먹고, 그제야 어떤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는지도 알게 됐어요. 케익은 먹으면 바로 설사해요. 제육볶음은 시설에선 못 먹어본 음식인데 나와서 먹어보고는 반해서, 지금은 제일 잘하는 음식이 됐어요. 물론 재료 손질이나 칼질은 활동보조가 하죠. 전 입맛을 담당하고 있어요.” (신경수)
 
시설 밖 자유로운 삶을 사는 신경수 씨의 관심사는 오로지 ‘투쟁’이다. 이 자유로운 공기를 시설에 있는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그 자유로움이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획하는 것일지 모른다.
 
남수진 : 안 해본 거 계속하고 있어요. 처음 하는 건 모르면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돼요. 여기 처음 오는 길인데도, 사람들한테 물어보면서 왔어요.사회자(조아라 발바닥행동 활동가) : 앞으로는 뭐 하고 싶어요? 남수진 : 일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미술하고 있어요. 사회자 : 이다음엔 뭐할 예정이에요?남수진 : 독립해야죠.
 


김범순 씨  교통사고로 중도장애를 입은 김범순 씨는 생의 절반을 시설에서 살다가 칠순이 다 되어서야 탈시설을 결심했다. ‘양로원 갈 나이’에 시설을 나온 것이다.
 
“교통사고 당해서, 하반신이 마비돼서 가족들이랑 같이 살았는데 같이 살다 보니 언성이 높아지고 다툼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시설 들어가서 28년을 살았어요. 그 안에만 장애인이 있는 줄 알았고 밖엔 장애인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어. 그래서 바깥에 나올 생각은 꿈에도 못했지. 28년 동안.내가 거기서 몸이 많이 아팠어요.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맨날 누워 있었는데 노들야학이란데 가면 공짜로 한방 진료해준다고 하더라구요. 2013년 2월달인가, 댕기기 시작했어요. 서너 번 나가보니깐 어머, 장애인들도 많고, 나보다 더 못한 사람도 나와살더라구요. 거기 ‘사랑'이라는 애가 있어요. 걔한테, 나와서 어떻게 사는 거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봤어요. 나보다 더한 중증장애인도 나와 사는데 나도 나오면 되겠다, 했는데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나보고 다 늙어가지고 양로원이나 가지 무슨 자립이냐고 하더라구요.자립했더니, 진짜 이런 천국이 없어요. 나는 바깥에서 장애인들 못 사는 줄 알았어요. 세상에, 나는 하반신마비지 손은 움직이거든. 나이가 많아서 문제지만은. 그런데 나이랑은 상관없더라구요. 양로원, 아직까지는 안 가도 되겠더라구요. 아주 좋아요. 하하하하.”
 
- “장애인들의 자기극복 미담으로 읽히지 않기를”
 
이 기록의 시작은 지난해 봄, 발바닥행동 여준민 활동가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제안을 서중원 작가는 이렇게 소개했다.
 
“시설에서 산 것 말고, 탈시설 이후의 삶을 기록해서 정말 사람답게 산 역사를 가진 한 인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심지어 가족조차 장애인이 시설에서 살던 모습만을 기억하지 시설 밖에서 어떻게 개성을 발휘하며 사는지는 모른다, 는 여준민 활동가의 이야길 듣고 무작정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 마음에 비해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죠.”
 
서 작가는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이 그 스스로 장애인과 섞여 살았던 삶의 경험이 없었다는 것과 그들의 언어를 잘 알아듣는 귀가 없었던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 어려움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글로 재구성하기까지 ‘글을 짓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으로 이어졌다.
 
“글 형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내가 목표한 구술기록 작업은, 나는 괄호 속 질문으로만 존재하고, 당사자로 하여금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자기 삶을 객관화시켜 들여다보게 하고 자기 삶의 좌표를 확인하고 자신의 언어로 답하게 하는, 그래서 글로 나왔을 때 전체가 본인 이야기만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였어요.그런데 저 자신이 장애인과 섞여 산 경험이 없는 데다가 이들 언어 자체를 알아듣는 게 어려웠어요. 발달장애인의 경우, 맥락을 파악하는데도 한참이 걸렸구요. 원고로 뽑아내면 짧거나 이분들 언어만으로는 힘들어 결국 따옴표에 그들 말이 들어갔고 제가 부연설명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냥 소설 같은 거예요. 자책을 많이 했어요. 구술 기록이란 내 인터뷰이들을 대상으로 머물게 하는 게 아닌데, 내 인터뷰이들이 소설 주인공처럼 대상이 된 거예요. 그런데 장애를 모르는 일반 독자들한테는 형태의 익숙함 때문인지 쉽게 받아들여지더라구요. 가독성과 목표했던 기록 작업 형식 사이에서 계속 방황했어요. 가장 좋은 기록자가 되기 위해선 활동가처럼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심에 가까운 기록이 나올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번 작업은 ‘나는 왜 시설 밖으로 나왔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당사자들의 응답이다. 11명의 탈시설 장애인의 목소리를 담은 서 작가는 탈시설이란 단순히 ‘시설에서 나와 사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이 사회 시스템을 갈아엎는 사회변혁운동”이라고 정의한다. 서 작가는 이 기록을 단지 ‘인간 승리의 미담’으로 소비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했다.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너무 집중할 때 현실적인 부조리에 눈 감아 버릴 수 있어요. 드라마틱한, 자기 극복 미담으로 이 책이 읽히기보다 왜 이분들이 이런 삶을 살아와야 했는가, 현실 속에서 왜 이런 제약을 받아야 하는가, 물음 던지게 하는 텍스트로 이 인터뷰 작업이 읽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