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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초점 [국민일보]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재잘재잘’… 66명 아이들 어디로
2015-06-29 11:07:20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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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재잘재잘’… 66명 아이들 어디로

‘통합교육 모범’ 은평 물빛어린이집, 재개발에 밀려 9월 폐원

입력 2015-06-29 02:56
 
 
엄마는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딸을 데리러 갔다. 딸은 어린이집 마당에서 한 아이와 놀고 있었다. 잠시 바라보는데 그 아이의 동작이 부자연스러웠다. 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가 딸에게 물었다. “아까 걔는 어떤 친구야?” 딸은 이렇게 답했다. “응, 나보다 조금 느린 친구야. 조금만 기다려주면 금방 잘해.” 

서울 은평구 수색동 물빛어린이집의 학부모 A씨는 최근 경험한 딸과의 이런 대화를 소개하며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 어린이집은 장애아·비장애아 구분 없이 한 반에서 가르친다. 통합교육 우수사례로 손꼽히는 곳이다. A씨는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성장하는 걸 딸을 통해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장애·비장애아 통합교육을 해온 이 어린이집이 재개발의 여파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은평구는 28일 “물빛어린이집을 9월 15일 폐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역 재개발 때문에 새 부지를 구하기 어려워 폐원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은평구가 재개발 보상비로 11억원을 신청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학부모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장애·비장애 통합교육 앞장섰는데…=물빛어린이집은 1991년 2월 개원해 9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동 이름(水色·수색)에서 따온 ‘물빛’이란 이름처럼 20년 넘게 ‘동네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이집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김모(56)씨는 “여기 다닌 둘째 아들이 지금은 군대에 가 있다”며 “이 동네에서 자랐으면 대부분 물빛어린이집 출신”이라고 했다. 

이 어린이집은 개인별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IEP)을 적용한다. 유아반 3개는 모두 장애아와 비장애아 구분 없이 구성돼 있다. 현재 원생은 모두 66명이다. ‘은평맘’ 등 엄마들 카페에서 입소문이 나 인근 동네뿐 아니라 역촌동이나 멀리 마포구 성산동에서도 찾아온다. 

한 장애아의 어머니는 “말을 하지 않던 첫째가 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말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둘째 아이도 어린이집 3곳을 옮겨 다니며 자폐에 가깝다는 판정을 받았는데 이곳에 와서는 선생님을 이모라고 부른다. 말도 늘고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학부모 허모(35·여)씨가 이 어린이집의 폐원 소식을 들은 건 이달 초였다.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이 지역이 재개발구역이라 이전할 것 같다는 짐작은 했지만 아예 문을 닫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청에 문의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이전할 부지를 찾고 있지만 (없으면) 폐원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구청은 허씨의 항의성 전화를 받고 나서인 지난 8일에야 어린이집으로 ‘수색4구역 재개발사업 관리처분에 따라 9월 15일 물빛어린이집 운영을 종료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폐쇄 후속 조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졸지에 어린이집 아이들은 석 달 안에 새로운 곳을 알아보고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학부모들은 “구청이 재개발 보상금으로 11억원을 신청해놓고도 정작 이전 대책은 없이 폐원만 밀어붙인다”며 불만이다.

◇11억원 보상 신청한 구청…나 몰라라?= 학부모들은 구청에 어린이집 부지 재개발 보상금 11억원으로 어린이집을 이전해 달라고 요구한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을 내쫓으면서 구가 받는 보상금을 아이들의 어린이집 이전에 쓰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명확한 계획이나 준비 없이 이렇게 폐원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학부모는 “폐원 결정 과정에서 교사나 학부모 얘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우리가 문의한 뒤에야 물어보는 질문에 답만 할 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은평구는 폐원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은평구 관계자는 “어린이집 인근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재개발이 이뤄지다 보니 이전 부지를 찾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등 공공시설 임대도 알아봤지만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보상금 사용 문제에 대해서도 “이전하려면 비용이 30억원 정도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며 “보상금 11억원으로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구는 보상금을 받게 되면 내년 예산에 어린이집 신설·확충 용도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당장 갈 곳 없는 아이들과 학부모의 마음에는 불신만 쌓이고 있다.
 
황인호 조효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