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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국민일보]거리 떠도는 ‘경계선 지능’ 아이들… 장애인 시설 적응 어렵고 비장애인 시설선 따돌림
2015-06-17 13:14:09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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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떠도는 ‘경계선 지능’ 아이들… 장애인 시설 적응 어렵고 비장애인 시설선 따돌림

가출 청소년들과 어울려 생활 성매매·절도 등 비행에 노출… 제도 사각지대 그대로 방치

입력 2015-06-17 02:19

 

지난달 28일 지적장애 3급 이현진(가명·17)양이 절도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에 붙잡혔다. 며칠째 감지 않은 듯한 머리에 옷차림도 꼬질꼬질했다. 이양은 이날 오후 8시쯤 지하철 종로3가역 편의점에서 1000원짜리 콜라를 훔치다 들켰다.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하자 ‘보육원 이모’ 전화번호를 댔다. 지난 2월 말 충남 서산의 보육원에서 ‘가출’했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피해액이 작은 데다 피해자도 처벌을 원치 않아 이양을 훈방하기로 했다. “친구 집에 가서 자겠다”는 이양의 안전을 걱정해 서울 시내 복지기관 10여곳에 연락했다. 보육원에서 가출한 지적장애 여자 청소년이 갈 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1시간이 지나서야 중구의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이양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은 한 달에 두 번만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다. 이양은 이미 지난달 8일과 17일 묵었던 터였다. 그는 직접 수화기를 들고 “다음 달 것을 당겨쓰겠다”고 부탁했다.

 

이양은 1998년 부산의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경계선급 지능을 갖고 태어났다. 지능이 낮고 적응력이 부족한 경우로 우리나라 인구의 약 7%가 해당한다. 어머니가 양육권을 포기해 아동보호기관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홉 살이 되던 2007년 12월에는 경계선급 지능의 아이들을 위한 충남 서산 보육원으로 옮겼다. 이 무렵 정서장애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치료에 매달렸지만 나아지는 게 없었다. 지난해 검사에선 지능지수(IQ) 49가 나왔다. 지적장애 3급과 양극성 정동장애 진단까지 받았다.

 

상태가 악화된 이양은 지난 1월 충남 아산의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로 보내졌지만 적응하지 못했다. 입소 이튿날 가출해 ‘가출팸’(가출 청소년 집단)과 어울려 성매매, 차량 절도, 앵벌이 등에 손을 댔다. 이 시설은 결국 지난 2월 이양을 서산의 보육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다음 날 다시 가출했다가 이틀 뒤 돌아왔고, 닷새 뒤에는 소란을 피워 병원에 사흘간 긴급 입원했다. 퇴원 다음 날 또다시 가출했다. 이렇게 시설을 떠난 이양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가출팸과 어울려 떠돌았다.

 

이양이 머물렀던 센터 관계자는 “이양처럼 보호자가 없는 장애 여성 청소년은 또래 가출팸에게 이용당할 우려도 있어 걱정되지만 어떤 조치든 강제적으로 취할 수는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정신보건법 시행규칙’의 ‘사회복귀시설 이용 및 운영에 관한 기준’은 “무연고자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퇴소가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 입소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퇴소를 제한해 시설에 계속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가벼운 장애를 가진 이양 또래의 청소년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전담 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장애인 인권단체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기관이 없다”며 “보통 장애인복지시설엔 중증 환자들이 많아 이양 같은 청소년이 적응하기 어렵고 비장애인시설에 가면 놀림을 받아 갈 곳을 잃는다”고 말했다.

 

이양처럼 딱 맞는 곳을 찾지 못하고, 맡겨진 시설에 적응도 못해 시설 입소 자체를 꺼리는 일도 잦다. 특히 연고가 없는 경우 안전을 위해 시설에 머무르는 편이 좋지만 인권 문제와 충돌하는 탓에 입소를 강제할 수 없다. 배 대표는 “안전 보호와 인권 보장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때 이양 같은 경계선 장애인들은 자기 권리와 선택의 폭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 지원센터 조윤경 선임연구원은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위해서는 특수한 의사소통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며 “시설의 장점과 시설 밖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그룹홈’ 제도가 대안이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늘어나는 수요를 시설이 따라잡지 못한다. 2012년 489곳이던 아동청소년 공동생활가정은 매년 줄어 지난해 476곳이 됐지만 이용자는 2012년 2438명에서 지난해 2588명으로 늘었다. 지적장애 3급이나 경계선 지능 해당자는 이 중 약 10% 정도다.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발달장애인법이 지난달 20일 제정·공포됐다. 전문가들은 11월 시행되는 법의 취지를 살리려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충실히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수민 김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