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NOW 장애계 단체 주요 이슈 및 기관공지 안내

이슈와 칼럼

이슈와 초점 [한겨례]‘자유형 1등’…시각장애 최길라가 금메달 걸지 못한 이유
2015-05-28 10:04:56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509
175.193.223.17

‘자유형 1등’…시각장애 최길라가 금메달 걸지 못한 이유

등록 :2015-05-21 16:07수정 :2015-05-21 23:02

 
 
장애인학생체전, 수영 100m 최고성적
그러나 규정상 공식경기 인정 안돼
출전 선수 부족 탓…“운동 여건 개선을”
21일 장애인학생체육대회 수영 경기가 열린 제주시 제주종합경기장 실내수영장. 출발대에 선 선수는 초등학생 두 명과 중학생 한 명 뿐이었다. “탕”하는 출발신호와 함께 물 속으로 뛰어든 세 선수는 자유형으로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20여m를 지나자 한 선수가 확연히 앞서나갔다. 시각장애 수영선수 최길라(12·강일초6)였다. 시각장애 선수지만 50m 반환점을 무리없이 돌아 독주하다시피 결승점에 도달했다. 기록은 1분26초46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여자 초등학생 중에 최고 성적이었다.

 

하지만 길라는 시상대에 서지 못했고, 목에 금메달도 걸지 못했다. 기록과 성적이 인정되는 공식적인 경기가 되려면 두 개 이상의 단체에서 세 명 이상의 선수가 출전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시각장애 선수는 길라와 그의 쌍둥이 동생 사라가 전부다. 둘은 지적장애 선수 한명과 함께 셋이서 공식이 아닌 시범경기를 치른 것이다. 길라·사라를 지도하는 서울시장애인체육회의 김민경 지도자는 “두 선수도 주역이 될 수 있는 실력인데, 공식 경기가 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전 11시에 치러진 경기를 마치고 관람석에서 두 선수와 어머니 조해란(48)씨를 인터뷰했다. 조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밝은 곳에선 제가 앞이 안 보이니 자리를 조금만 옮기죠”라고 말했다. 조씨와 두 자매는 유전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홍채가 일부만 자라거나 아예 자라지 않아 시각장애를 갖는 ‘무홍채안’에 해당된다. 조씨는 “아예 안 보이진 않고, 빛을 조절하는 홍채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밝은 곳에선 안 보이고, 어두운 곳에선 흐릿하다. 어릴 땐 원래 세상이 이렇게 보이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수영선수들은 앞이 아예 안 보이는 ‘전맹’과 흐릿하게 보이는 선수들이 나뉘어 시합을 치른다. 전맹 선수(등급 S11)들은 반환점을 돌 때, 조력자가 플리스틱으로 된 터치봉으로 선수들에게 반환점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전맹이 아닌 시각장애 선수(S11~S13)들은 빛의 투과율이 조절되는 특수 물안경을 쓰고 경기에 나간다.

 

조씨는 딸들이 이번 대회의 조역에 그친 것을 아쉬워했다. “시각장애인들이 별로 없어서 수영선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이 하기 힘들다고 여기거나, 운동을 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아서”라고 그는 말했다. 조씨는 “나는 어린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냈다. 우리 애들만큼은 세상으로 나가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길라와 사라에게 네살부터 수영을 시켰다. 운 좋게도 집 근처인 서울 고덕동 서울수중재활센터에 장애아동을 위한 수영교실이 있었다. 조씨는 “수영은 눈이 안 보여도 다칠 일이 거의 없고, 순발력과 체력이 좋아져 나중에 다른 운동을 하기에도 좋다. 아이들이 물에서 노는 것도 워낙 좋아했다”고 말했다.

 

2년 전 장애인 지역 대표선수로 발탁된 길라와 사라는 둘이서 주5회인 평일 내내 서울 강동구 강일동 집에서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을 왕복한다. 평일 오후에 늘 훈련이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매일 버스차비를 댈 수 없다. 집에서 25분 걸어 지하철역으로 가면, 무료인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 종합운동장까지 간다. 한시간도 넘게 걸리는 그 길을 투정도 부리지 않고 서로 손 잡고 매일 다녀온다”고 말했다. 또 조씨는 “종합운동장 말고는 장애 학생들이 훈련할 수 있는 50m 길이의 수영장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조씨와 대화하는 사이 옷을 갈아입고 온 최길라·사라양은 옆에서 과자를 까먹고 있었다. 두 자매에게 꿈을 물었다. 의외의 대답들이 나왔다.

 

길라는 “통역가가 되고 싶다. 수영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면 국외에 자주 돌아다닐거고, 그렇다보면 자연스레 외국어를 잘 익힐테니, 선수로 은퇴한 다음엔 통역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외국어를 조금 하느냐”고 묻자, 길라는 “학교에서 배워 조금 한다”고 조심스레 답했다. 조씨는 “학원은 못 보내지만, 학교에서 영어 배우는걸 재밌어 한다”고 말했다. 사라는 “스키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씨는 “시각 장애인들도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다. 심지어 공 안에 소리나는 물건을 넣어 농구나 탁구도 할 수 있고, 가이드에게 도움을 받으면 스키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씨가 장애인학생체육대회에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다. “다음 대회엔 사라와 길라도 친구들 만나고, 저도 다른 어머님들 만났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정말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도 어떤 시각장애 아동들은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낼 것”이라고 조씨는 말했다.

 

제주/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출처: 한겨례(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6922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