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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초점 [경향신문]가출 일주일 동안 지적장애소녀에게 가해진 성폭력
2015-05-13 09:45:16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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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변호사의 서울 현장 일기]가출 일주일 동안 지적장애소녀에게 가해진 성폭력

배진수 변호사|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오늘 십대여성인권센터에 방문해서 처음 대면한 은주(가명)는 수줍은 미소와 맑은 눈을 가진 14세 소녀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은 어눌한 말투와 특유의 수줍음을 통해 지적장애가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은주네 집 형편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스무 살 어린 시절에 은주엄마를 쫓아다니던 은주 아빠는 엄마가 은주를 임신한 뒤 떠나버렸다. 그런 까닭에 은주는 태어나서 아빠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자랐다고 한다. 가출 후 성매매에 노출되는 십대들은 은주처럼 빈곤, 가정해체, 가정폭력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13세를 2개월 지난 작년 6월 경, 은주는 엄마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려 액정을 깨고는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혼자 잘 곳이 없던 은주는 휴대폰의 친구찾기 앱을 통해 재워줄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는 연락해 온 한 성인 남성에 의해 모텔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은주는 혼란스럽고 무서운 나머지 더 이상 엄마에게 연락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은주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시 앱을 통해 재워줄 친구를 찾는 것뿐이었다. 그때부터 일주일 간 은주는 7명의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엄마가 가출신고를 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 후 은주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은주와 은주엄마는 해바라기 아동센터에 찾아가 은주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하고 피해자변호사를 선임받아 성폭력 피해에 대해 진술했다. 은주엄마가 가해자들의 증거를 모아 경찰서에 제출하고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은주는 극도로 불안감을 느꼈다. 심각한 우울증을 보이던 은주는 결국 자살시도를 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은주엄마는 해바라기 아동센터의 도움을 받아 사건이 잘 처리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텼다.

성폭력이 아니라 성매매, 성매매에는 피해자가 없다?

경찰수사를 통해 총 7명의 남성이 가해자로 특정되어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수사 결과 5명의 남성은 성폭행이 아닌 성매매를 이유로 기소되었다. 나머지 2명은 성매매의 대가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처음부터 신고를 접수하고 사건을 지원해 주던 해바라기아동센터에서 경찰조사 결과에 따라 이 사건은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성매매 사건이어서 더 이상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현행법 상 은주의 법적지위가 성폭력이 아닌 성매매 범죄의 대상으로 바뀔 경우, 성범죄의 피해자에게 국가에서 선임해주는 피해자국선변호사의 도움도 ‘성범죄의 피해아동·청소년’이 아니라는 이유도 받지 못할 위험에 처한다(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성매매의 피해자는 ‘피해아동·청소년’ 아니라, 성매매의 대상이 되었다하여 ‘대상아동·청소년’으로 분류한다. 법무부에 질의한 결과 대상아동청소년은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피해자변호사를 선임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만13세 2개월의 은주에게 일어난 일은 성매매일까? 성폭행일까? 필자에겐 이 사건이 13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을 강간한 사건과 근본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성폭력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7조에 따르면 13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을 강간하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엄중하게 처벌한다). 아직 가치관이 성숙하지 않은 십대들에게 성폭행과 성매매를 구별하여 성매매는 너희들의 책임이라고 단죄하고 도움의 손길을 거둬들이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성매매의 대상이 된 청소년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그 중간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성을 착취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욕망과 사회의 무관심이 낳은 ‘피해자’이다. 그러나 현행법상으로 은주와 같은 십대 성매매 여성들은 성범죄의 피해자와 성매매 대상청소년 사이 어딘가에서 갈 곳을 잃는다.

십대 ‘성착취 피해청소년’를 돕는 십대여성인권센터

결국 은주와 은주엄마가 찾아온 곳은 십대여성인권센터였다.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단체나 기관은 많다. 그러나 성매매로 단죄된 ‘성착취 피해청소년’을 돕는 전문적인 단체는 흔치 않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미성년자의 성을 사는 어른들에 의해 육체적, 정신적, 물적 피해를 입은 십대들에게 상담, 교육, 법률 및 의료서비스 등을 지원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단체이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는 탈성매매 후 자립을 꿈꾸는 사또(사이버 또래 상담사)들이 있다. 사또들은 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가 대부분 인터넷 채팅사이트나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 공간에서 성매매 위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직접 다가가서 상담을 해주고 있다. 또, 센터에서는 청소년성장캠프를 운영하여 10대 청소년들이 성매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은주와 은주엄마는 이곳의 법률지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가해자 7명 중 2명에게 내려진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항고했고, 그 중 한명에 대해서는 재수사가 결정되었다. 필자도 은주의 성을 산 나머지 가해자들에 대한 공판절차에서 피해자를 위한 변호사로 활동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의 법률적 조력을 제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