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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초점 [KBS]태권도장에서 발견된 한 장애인의 죽음
2015-05-11 13:31:59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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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

어머니는 매일 도시락을 손수 만들었다. 태권도장에서 ‘틱장애’ 교정을 위한 합숙 훈련을 받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였다. 반찬이 물리지는 않을까. 양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식단표까지 꼬박꼬박 적어가며 매일 다른 반찬을 만들었다. 아들을 지도하는 관장과 사범들의 몫까지 넉넉하게 준비했다.

그렇게 만든 도시락을 태권도장으로 직접 배달하면서 어머니는 매번 아들의 안부를 물었다. 매일 태권도장을 찾았지만 어머니와 만나면 훈련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에 한 달 넘게 아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지도하는 관장과 사범들은 “000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만 믿고 어머니는 아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지난해 10월 28일, 어머니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태권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경찰의 전화였다. 어머니는 믿을 수 없었다. 바로 전날까지도 도시락을 가져다주며 사범들에게 아들의 안부를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혼미한 정신을 겨우 가다듬으며 어머니는 태권도장으로 달려갔다. 아들은 없었고, 전날 두고 온 도시락만 있었다. 도시락에서 사범들 몫은 비워져 있었고, 아들의 몫은 밥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 지옥 같았던 태권도장 합숙훈련

26살 아들 고 씨는 정신지체 3급의 장애가 있었다. 쾌활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남을 돕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체육활동을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남들보다 조금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어머니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바로 ‘틱장애’였다. 아들은 가끔씩 갑자기 평정심을 잃고,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틱장애’ 증상을 보일 때가 있었다.

어머니가 태권도 훈련으로 ‘틱장애’ 교정을 해보자는 김 모 관장의 제안을 받아 들인 건 지난해 8월쯤이었다. 평소 장애문제에 관심이 많고, 장애인태권도 지도자 자격증까지 있는 김 관장이 진짜 장애를 교정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처음 얼마간 순조로운 듯이 보였던 ‘훈련’은 ‘합숙’으로 바뀌면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관장은 훈련을 시키다가 고 씨가 말을 듣지 않으면 폭력을 썼다. 뺨을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각목으로 한번에 10번 이상씩 수차례 구타했다. 몸 여기저기에 피멍이 들었다. 제대로 된 치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과수는 부검을 통해 “가슴과 배, 다리, 엉덩이, 팔, 등 온몸에서 발생 시기가 다른 다수의 피하출혈이 있다”고 밝혔다. 6개의 갈비뼈가 부러졌고 이미 부러졌다가 붙은 갈비뼈가 또다시 부러진 흔적도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폭력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다.

부러진 갈비뼈 조각들이 고 씨의 폐를 찔러 염증을 유발했다. 근육은 파열됐고 무릎관절엔 고름이 찼으며 엉덩이에는 욕창이 생겼다. 국과수는 고 씨의 사인에 대해 “변사자는 심각한 다발성 손상 및 이에 합병된 감염증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키 182cm에 몸무게가 78kg이던 건장한 체격의 아들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 56kg의 앙상한 주검으로 변해있었다.

■ 2일 교육에 합격률 95% ‘장애인태권도 지도자 자격증’

이해를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던 ‘장애교정훈련’의 이면에는 장애를 폭력으로 교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관장의 왜곡된 가치관이 있었다. 하지만, 고 씨를 지도하던 관장은 ‘장애인태권도 지도자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장애인을 지도할 수 있는 기초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관장은 대체 어떤 교육을 받았던 것일까.

취재진은 장애인태권도협회에서 발급하는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자격증의 실체를 알아보았다.하루에 8시간씩 이틀 동안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하면 자격증을 딸 수 있다. 그나마 실기 교육은 20시간의 봉사활동 실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틀 교육으로 모든 장애 유형의 지도가 가능한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시험은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을까. 취재진이 입수한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시험 문제지를 보니 객관식 20문항 가운데 12개, 즉 백 점 만점에 60점만 넘으면 합격이었다. 특수교육 전문가와 시험 문제 분석했다. 장애인 올림픽의 명칭, 장애인 체육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를 묻는 등 장애인 교육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제가 절반이 넘었다. 특수교육과 관련 있는 문제는 7개에 불과하다는 결론이었다. 문제를 살펴본 김유리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문항들이 너무 기초적인 데다가 태권도 사범으로서 장애학생을 지도하는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묻는 문항으로서는 변별력도 떨어진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합격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응시자 162명 가운데 95%가 합격했다. 지난 3년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1천 5백여 명의 태권도 사범이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 장애에 대한 무지…잇따르는 비극

태권도장을 찾는 장애인들의 발걸음은 점점 늘고 있다. 특히 몸이 온전해서 신체적인 활동을 원하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많다. 부모들은 특히 장애가 있는 자녀들이 태권도장에서 일반인과 어울리는 경험을 쌓기를 바란다. 하지만 태권도장에서 장애교육을 할 준비는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자격증은 물론이고, 대한태권도협회 차원의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 않다.

지난 1월에는 대구광역시의 한 태권도장을 다니던 지적장애 3급인 한 모군이 태권도 관장에게 폭행을 당했다. 한 군을 때린 관장 역시 훈육이 목적이었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피해아동의 아버지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맞아도 웃으면서 다니고 때린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고 똑같이 행동하기 때문에 피해를 알아채기가 더 어렵다고 하소연 했다.

지난 2013년에도 경북 구미의 한 태권도장에서 40대 관장이 지적장애 3급인 11살 김 모 양을 골프채로 10여 번 때렸다. 하반신에 피멍이 가득 생긴 김양은 오랜 기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몸의 상처보다 더 심각한 건 김양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지난 2005년에는 경북 포항의 한 태권도장에서 훈련을 받던 지적 장애 5급 23살 권 모 씨가 관장에게 머리를 맞아 숨졌다. 권 씨는 고 씨처럼 태권도 관장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합숙훈련’을 받고 있었다. 대소변을 제대로 못 가린다는 것이 폭행의 이유였다. 역시, 훈육을 앞세운 폭력에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셈이다.

■ 부끄러운 패럴림픽 정식 종목 채택

최근 태권도는 오는 2020년 도쿄 장애인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됐다. 태권도계에서는 이를 태권도 발전을 위한 큰 경사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반 장애인들이 일선의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울 준비는 거의 되어있지 않다. 장애 유형에 맞춤 품새 등 구체적인 교범은 물론이고, 지도자 교육역시 미흡한 실정이다. 잇따르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장애인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에 걸맞은 내실 있는 교육과정의 보완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