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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칼럼 [에이블뉴스]장애를 최대한 숨기려 했던 고교생의 변화
2015-02-09 10:01:25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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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최대한 숨기려 했던 고교생의 변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되길 꿈꾸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5-02-06 10:16:06
“너는 장애인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다를 바 하나도 없으니 어디서든 절대 기죽지 말거라.”

어린 시절, 아버지께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말이었다. 그 어느 부모가 자식이 평생 짊어져야 할 아픔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을까마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권위와 완강함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는 다른 가족들보다도 유독 나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셨었다.

유난히 손이 귀했던 집안에서 오랜 염원 끝에 태어난 아픈 손가락이었던지라 딸의 말이라면 십중팔구 오케이를 해 주시던 분이었지만 나의 장애로 인해 마주하게 되는 문제 앞에서는 그 누구와도 한 치의 타협이 없으셨던 분.

뿐만 아니라 간혹 함께 거리를 거닐다 절뚝이는 내 걸음을 비아냥대거나 손가락질하는 이들을 만나기라도 할 때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정중한 사과를 받아 내고도 좀체 분을 삭이지 못하시는 분 또한 우리 아버지셨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부정(父情)이 낳은 부정(否定)을 서슴지 않던 아버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고 자란 탓일까? 불과 몇 년 전까지 내가 이렇게 장애를 주제로 나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칼럼을 쓰게 될 거란 상상은 감히 하지 못했을 정도로 나 역시 나 자신의 장애를 수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동반되었다.

“소나야, 엘리베이터 좀 타고 다녀라.”

고등학생 시절, 나를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시던 선생님들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몸이 불편한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버젓이 설치된 교내 엘리베이터를 뒤로한 채 4, 5층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리다 머리가 찢어지고 여기저기 골절상을 입는 일이 부지기수였을 정도로 지독하게 고집스런 삶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어느 여름 날.

4교시 수업 후 오매불망 기다리던 점심시간, 여느 때와 같이 교실이 있던 4층에서 1층 식당으로 계단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어, 어, 어, 어, 어!’
“쿵!”

난간을 잡고 있던 손이 미끄러지며 순식간에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추락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소나야,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라.” 복도를 지나시던 선생님의 신신당부에도 아랑곳 않고 꾸역꾸역 부린 고집이 초래한 결과였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머리가 심하게 찢어진 뒤였고 이미 온 몸과 주위를 붉게 만든 피바다에 아직 온전치 못한 정신을 추스를 새도 없이 모든 일과를 뒤로하고 병원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2년의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벌써 세 번째 일어난 사고였다.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나보다 더 놀라신 선생님들의 부축을 받으며 치료를 마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교실에 돌아와 보니 잔뜩 인상을 찌푸린 한 친구 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으이그. 하여튼 고집은.”

한 반 급우로 생활했던 1학년 때나 다른 반이던 2학년 때나 고등학생이 되어 만난 친구들 중 가장 편안하게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하던 사이였기에 이렇다 할 한 마디 없이 한동안 나의 두 손을 꼭 잡아주던 친구놈은 곧 잡고 있던 손을 휙 뿌리치며 말했다.

“야, 너 이제 엘리베이터 안타고 다니면 죽을 줄 알아. 알았냐?”
“아니 왜 대답이 없어? 알았냐고 몰랐냐고?”

함께 지낸 시간만큼, 함께 나눈 이야기만큼 내 성향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친구였기에 평소였다면 그저 서로의 어깨를 맞대는 것으로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었으련만, 웬일인지 이날은 친구놈의 질문세례가 쉽사리 그치질 않았다.

집요하게 반복되는 말에도 그저 멋쩍은 웃음으로 일관하던 내 모습에 지쳐버렸는지 곧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한숨을 푹 내쉬던 친구. 하지만 뒤이어하던 친구놈의 한 마디는 나로 하여금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야, 너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며. 네 후대에 태어나는 장애인들은 조금 더 편한 세상에서 차별받고, 소외당하지 않게 해 주고 싶다며. 너 그런 세상 만드는 사회복지사 된다며. 그럼 네가 먼저 해야 되는 거 아냐?

무작정 우리랑 똑같이 한다고, 다들 계단으로 다니는데 너만 엘리베이터 타고 다니는 거 미안하고 눈치 보인다고 계단으로 다니다가 맨날 깨지고 넘어지면서 고집부릴 게 아니라 네가 먼저 당당하게 네 권리 찾아야지.

우리 같은 사람들 속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다니는 너를 이상하게 보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보는 세상 네가 만들어야 될 거 아니야. 네가 안 바뀌는데 세상이 어떻게 바뀌냐?”

그 시절 나의 목표는 오직 하나.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처음 만났던 담임선생님. 나를 ‘장애인’이 아닌 그저 ‘우리 반 학생’으로 그 어떤 일에도 차별을 두지 않으셨던 우리 담임선생님처럼 나 역시 후대의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로 인해 소외되고 차별 당할 때 힘이 되고 희망이 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고, 또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장애조차 인정하지 못한 채 벌써 수년을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스스로가 만든 차별의 늪에 철저히 가둬버리고 만 것이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보며 흔히들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가 바로 장애가 온전히 치유되는 것이 장애인들의 가장 절실한 꿈일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헛된 희망을 품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직 낫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주일에 서너 번, 그야말로 지옥문에 들어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웠던 재활치료도 ‘악!’ 소리 한 번 없이 묵묵히 감당하기도 해 보았다. 한창 사춘기 때는 친구들처럼 마음껏 뛰고 싶은데, 똑바로 걷고 싶은데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내 몸을 마구 내리치며 한없는 원망을 하기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그런 부질없는 원망의 싹을 키우기보다는 1%의 가능성도 없는 헛된 희망을 바라기보다는 나와 같은 장애인들이 좀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꿈꿀 뿐이다.

팔이 부러진 사람이 깁스를 한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

자신의 장애를 최대한 숨기려 애걸복걸했던 한 고등학생의 독불장군같은 모습이 아닌 진정한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며 당당히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대중 앞에 환한 치아를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의 장애가, 그리고 내가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무엇인지 오늘도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봐야겠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