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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초점 장애인계가 기억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2009-05-29 09:21:00
관리자 조회수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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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관련 법제도 큰 진전을 이룬 대통령 LPG 폐지, 고용장려금 축소 등 안좋은 기억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봉하마을에는 추모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인터넷에서도 추모 물결이 크게 일었습니다. 그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안타까움에 인터넷 상에서는 타살설, 음모론 등이 만들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지만원, 김동길, 변희재 등 보수논객들의 막말 논란은 아직도 뜨겁습니다. 장애인계도 추모 행렬 동참 장애인계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일단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국가적인 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 장애인관련 일부 행사가 연기됐는데요. 지난 25일 국회의원회관 대로비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전국장애인바둑대회'가 무기한 연기됐고, 지난 28일 열릴 예정이었던 '2009 세계장애인문화예술축제' 조직위원회 출범식도 연기됐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상처 준 정책도 적지 않아 하지만 장애인계의 전체적인 반응은 봉하마을처럼, 인터넷처럼 뜨겁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장애인단체들은 숱하게 성명과 논평을 내곤 하는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성명서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가 내놓은 성명이 유일합니다.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1주년을 맞아 내놓은 성명에서는 첫 머리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만 들어갔을 뿐입니다. 잠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을 회상해 보니, 그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장애인계의 지지는 뜨겁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참여정부가 단계적 폐지를 결정한 장애인차량 LPG 세금인상분 지원사업 때문에 장애인계의 민심은 흉흉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차 있는 장애인은 고소득 장애인, 차 없는 장애인은 저소득 장애인이라는 논리’는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장애인들끼리 싸우게 만들었습니다. 준비 없는 장애인사업의 지방이양은 많은 폐해를 낳았습니다. 좀 더 준비를 해서 내려 보내자는 장애인들의 주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분권교부세를 신설해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도록 했지만 한시적인 조치였을 뿐입니다. 장애인고용장려금의 축소는 일하던 장애인마저 일자리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기금에 대한 일반회계 지원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장애인 고용을 위해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사업은 기업이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아 내는 고용부담금으로 충당됐습니다. 정권 말기에 발표된 1, 2차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 대책은 본인 스스로 장애인계에 너무 무심했다며 유시민 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에게 지시해 만든 것인데요. 정권 말기에 만들어지면서 파워가 약했고, 기존 정책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면서 짜깁기라는 비판도 들어야했습니다. 그래도 장애인인권 법제도 큰 진전 그래도 장애인인권을 위한 법제도적인 큰 진전은 이뤄졌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청와대에 장애인들을 초청해 서명식을 가졌습니다. 이때 장애인 인권활동가들은 기습 플래카드 시위를 벌여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요. 낡은 특수교육진흥법을 폐기하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을 만든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이었습니다. 마지막 인권조약인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 유엔에서 채택된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와 엔지오는 이 협약이 만들어지는데 큰 파트너십을 발휘했었습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있던 장애인체육 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된 것도 참여정부의 업적으로 기록됐습니다. 재활에서 자립생활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반영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도 참여정부 시절입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통과된 것도 그때였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장애인인권을 위한 법제도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들은 거리로 나가 비인간적인 장애인들의 현실을 알렸고, 때로는 철로를 점거하고 도로를 점거했습니다. 당시 장애인들의 요구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참여정부의 원망은 컸었는데요. ‘그래도 그 때가 좋았지, 상식은 통했으니까’ 이명박 정부에 와보니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고 장애인들은 회상합니다. 시원스럽게 장애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진심은 통했으니까요. 장애인들이 나서서 설득하고 이해시키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변화를 도모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장애인계는 큰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장애인인권은 퇴보할 수 있고, 장애인복지도 뒷걸음질 칠 수 있다는 교훈 말입니다.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정치적인 공세 속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축소됐습니다. 장애인 인권 침해 논란이 있는 인사는 국가인권위원 자리에 앉았습니다. 정부 내 장애인관련 주무부서들은 통폐합 진통을 겪었습니다. 무슨 의미나 논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정부에서 정해놓은 인원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통폐합 대상에 포함됐고, 장애인들이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효율화를 논하면서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의 위상 약화 시도도 있었습니다. 장애인과 함께 한 시간 더 있었더라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장애인단체가 마련한 장애체험 행사에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휠체어 체험도 해보고, 안대를 쓰고 영화도 보고 밥도 먹는 체험이었습니다. 모든 체험을 마치고, 그는 그동안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장애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당선이 된 뒤로, 쏟아지는 국정과제들에 떠밀려 그 때의 깨달음을 잠시 잊게 됐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뒤늦게 장애인 문제에 소홀했다는 점을 깨닫고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을 내놓게 되는데, 그때는 늦고 말았습니다. 만약 장애체험 이후로, 노 전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장애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장애인계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면 우리나라 장애인정책은 큰 진전을 거뒀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하지만 대통령 이전에 그도 한 인간이었고, 완벽하진 않았습니다. 이젠 그를 편안히 보내주려 합니다. 잘 가세요, 우리들의 영원한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