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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초점 내 사랑, 호주의 국가보험장애제도를 소개합니다.
2021-03-20 08:38:10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조회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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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호주의 국가보험장애제도를 소개합니다-⓵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3-19 09:42:03
내 사랑, 호주 국가보험장애제도를 소개합니다. ⓒ이루나 ▲ 내 사랑, 호주 국가보험장애제도를 소개합니다. ⓒ이루나
살짝 자존심 상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나의 영어 실력을 의심했다. 그리고 되물었다.

“뭐라고요? 벤에게 서포트 워커(Support worker, 한국의 활동지원사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사람)를 지원해 준다고요?”

코디네이터인 미쉘이 연신 상냥한 미소를 띠며 답했다.

“당신 가족은 다른 문화권에서 different background(호주 공공기관에서 ‘이민자’라는 표현 대신 사용하는 표현) 왔고, 호주에 다른 가족도 친척도 없으니까 벤을 돌보고 지원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거 같네요. 벤의 지역 사회활동 참여를 높이고, 부모랑 떨어져 독립하는 연습을 시키려면 서포트 워커 지원이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아요.”

아들 벤에게 서포트 워커 지원이라니, 마음속으로 살짝 욕심은 내봤지만 전혀 가망이 없어 보여서 이미 체념한 상태였다. 그런데 요청하지도 않은 서비스를 먼저 제안하는 공무원이 있다는 게 실화란 말인가? 도대체 내가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는 건가 귀를 의심하면서도 표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잘은 몰라도 잔뜩 긴장하고 얼어 있었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을 것이다.

미쉘은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호주 국가장애보험기관(NDIA,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Agency) 소속이고, NDIA는 전국에 설치되어 있는 호주 연방 정부 차원의 국가장애보험제도(NDIS,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를 직접 관리하고 실행하고 집행하는 기관이다.

코디네이터(Coordinator)란 NDIA 소속으로 국가장애보험에 등록된 해당 장애인에게 국가에서 매칭해주는, 쉽게 말하면 국가에서 제공해주는 장애관련 각종 컨설턴팅을 해주는 공무원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벤을 키우면서 궁금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문의하거나, 국가장애보험에서 제공하는 펀드(NDIS에서 책정하는 일년간의 지원금액)를 사용하면서 질문이 있을 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코디네이터다.

또한 일년이 끝나갈 즈음에는 다시 코디네이터와 일정을 잡아서 일년간 벤의 발달과 성장이 코디네이터와 부모가 함께 세운 목표들에 얼마만큼 도달했는지 점검도 하고, 일년간 발생한 또 다른 도전들을 상담해서 다음 해 목표, 그에 맞는 맞춤별 지원계획, 또다시 새로운 펀드 금액을 책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도 코디네이터이다.

“고생 많이 하셨어요. 이제 진단이 내려졌으니 그동안 부모 혼자 짊어졌던 짐들을 각각의 전문가들에게 분담시키는 일을 시작합시다. 지금부터는 학교-전문가-정부-지역사회가 팀으로 벤의 어려움들을 지원할 테니 부모님이 앞으로는 좀 수월해 질 거예요. 이제부터 부모는 벤의 어려움과 단점은 전문가에게 나누고, 앞으로는 벤을 더 사랑하고 장점과 강점에 집중하도록 하세요.”

소아과 전문의인 캐서린이 벤에게 (고기능) 자폐성 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 진단을 내리면서 국가 장애보험제도를 안내했다. 해당 기관에 제출하라며 의사 소견서(Professional letter)도 작성해 줬건만 의심 많은 엄마는 반신반의했다. 고기능(구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매년 교사들도 내가 진단 사실을 말해주기 전에는 인지하기도 어렵고, 캐서린을 만나기 전 전문가들도 여러 번 진단을 놓쳤고, 비장애인들은 자폐인이라 상상도 못하는 벤이 NDIS의 펀드를 받을 자격이 되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지원을 받는다 한들 그 금액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도 들어서 일년이 다 되도록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나는 사십 여년 넘게 한국에서만 살아 온 뼛속까지 한국인이고 교사, 즉 공무원이었다. 한국에서 장애인이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특히 벤처럼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도 않는 발달장애인이 지원을 받으려 할 때의 처지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심사의 통과 여부를 떠나 나의 비참함과 불운을 얼마나 구구절절하게 읊어야 하고 또 필요한 서류는 얼마나 많을까, 지레 짐작에 이미 지쳐 있었다.

“루나, 걱정하지 말고 전화 한번만 걸어 봐. 그러면 NDIS 직원이 친절하게 다음 절차들을 안내할 거야. 그리고 영어 때문에 불편하면 바로 한국어 통역사도 연결해줄 거야.”

보조교사 자격증 과정에서 만난 호주 친구 엘리가 말했다. 그는 벌써 2년 전부터 (고기능)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두 아이를 NDIS에 등록해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만약 통역사가 필요하다면, 1번을 눌러 주십시오.”

NDIS에 전화를 걸자 흘러나오는 자동응답기의 멘트에 모든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나처럼 수많은 비 영어권의 문화에서 온 장애 당사자나 가족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문화권 별로 통역사를 배치해 주는 배려, 이 나라 뭔가 좀 멋지다.

‘일사천리’란 말은 이런 때 필요하리라. 전화 한번 넣었는데 8년간 엉켜 있던 실타래가 술술 풀리는 듯했다. 안내받은 대로 NDIS 신청서와 함께 의사가 준 서류를 이메일로 동봉하고 2주쯤 지나자 답이 왔다. 벤은 NDIS의 지원대상이며, 우리가 사는 지역의 NDIA로 자동으로 연결이 될 것이고, 조만간 코디네이터가 배정되어 직접 가정으로 연락이 갈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미안한데, 여기서 플랜 미팅을 종료하고 다음에 날짜를 다시 잡고 싶어요.”

내게 처음 배정된 코디네이터는 미쉘이 아니라 제인이었고, 나는 제인과 대화를 시작한지 10여분 만에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래 동안 기다려온 일, 서둘러서 펀드를 받아 아들을 도와줘야 할 상황에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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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루나 (bom0229@gmail.com)